미국·이스라엘의 전격적인 이란 공습으로 세계 경제가 더 큰 불확실성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수출이 많은 한국 등 소규모 개방 경제 국가는 유가 급등,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일단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장기화다.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ㆍ이라크ㆍ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산유국의 수출 통로라서다.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20∼30%가 지나가는 글로벌 에너지의 ‘대동맥’인 셈이다.
이란이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해협을 장기 봉쇄할 경우 유가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 간 긴장으로 국제유가는 이미 올해 들어 약 20% 상승한 상태다.
전 세계적으로 상품의 생산ㆍ운송 비용이 치솟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이는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를 후퇴시키는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윌리엄 잭슨 캐피털 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에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장기적인 분쟁은 유가를 배럴당 약 100달러까지 급등시켜 세계 인플레이션에 0.6~0.7%포인트를 추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도 크다. 글로벌 자금의 안전자산 선호가 겹치면 달러 강세가 가속화할 수 있다. 호주 커먼웰스은행(CBA)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은 순(純) 에너지 수출국이라는 점에서 유가 상승의 상대적 수혜를 볼 수 있다”며 “미 달러는 일본 엔화와 스위스 프랑을 제외한 대부분 통화 대비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는 한국의 원ㆍ달러 환율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원·달러 환율은 한때 1480원 선을 위협했던 원화 약세 국면에서 벗어나 1420원대까지 내려오며 점차 안정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중동 변수 재점화와 함께 환율 상방 리스크가 다시 커지는 분위기다. 28일 새벽 2시 원ㆍ달러 환율은 전장 서울외환시장 종가보다 14.20원 급등한 1444.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매도세가 컸음에도 환율이 비교적 안정된 것은 수급 요인이 일부 완화됐기 때문”이라며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추가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증시에도 부담 요인이다. 최근 인공지능(AI)의 파괴적 혁신이 기존 산업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증시에 이번 사태가 또 다른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뉴욕증시의 S&P500 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전장보다 0.43%와 0.92% 하락했다.
그러나 단기 악재에 그칠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산유국 그룹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OPEC+가 대규모 증산을 추진하는 데다, 사우디아라비아ㆍUAE 등이 호르무즈 해협 대신 다른 수출 항로를 쓸 수 있는 만큼 유가 상승 압박이 상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내 정치적인 이유도 있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물가 상승과 증시 폭락이 부담될 수 있는 만큼 ‘위험 관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금융 시장이 휴장하는 주말을 공습 시기로 택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정부가 이번 공습 뒤 전략적으로 비축 중인 석유 물량을 풀 계획이 없다고 1일 보도했다. 미국 내부에서도 유가 급등의 위험성이 제한적인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한국 정부는 긴급 대응에 나섰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기관 합동 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중동 현지 동향과 국제 에너지 가격, 금융시장 변동성 등에 대한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했다. 금융위원회도 필요하면 ‘100조원+α’ 규모의 시장안정프로그램을 신속히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