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성능이 고도화할수록 정보기술(IT)업계와 실물 경제는 도리어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인공지능(AI)의 역설’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간 AI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이 빅테크 기업들의 과잉 투자를 의식한 거품론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AI가 재편할 기존 경제 구조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1일 블룸버그 등 외신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IT 업계에서는 AI가 업무에 활용되는 것을 넘어 고용 및 소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AI가 발전할수록 기업들은 인간 직원들을 해고하고, 직장을 잃은 실업자들은 소비를 줄여 마진 압박에 빠진 기업이 AI에 더 투자할 것이라는 ‘제동 장치 없는 악순환’ 시나리오를 두고 시장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발단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리서치업체 시트리니 리서치가 공개한 ‘2028 글로벌 지능 위기’ 보고서였다. 보고서는 AI 발전의 역설로 “2028년 6월 미국 실업률이 10.2%에 달하고, S&P 지수는 2026년 10월 고점 대비 누적 38%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28년 실업률이 치솟고, 대형 금융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전망이었다. 보고서에 2028년이라는 명확하고 가까운 시점이 명시되자 시장은 들썩였다. 거론된 기업들의 주가도 전 거래일 대비 4~7% 떨어졌다.
토머스 조지 그리즐 투자 자산운용 포트폴리오매니저는 “AI의 파괴적 혁신에 관한 실질적 우려를 충분히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AI발(發) 인력구조 재편은 이미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지난달 26일 X(옛 트위터) 공동 창업자인 잭 도시가 설립한 미국 핀테크 기업 블록(Block)은 전체 인력의 절반에 가까운 4000명을 해고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도시는 주주 서한에서 “AI 도구를 활용하면 훨씬 더 적은 인원의 팀이 더 많은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 불거지고 있는 AI의 역설이 다소 과장된 시나리오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기술에 대한 적응·정착 기간을 간과한 결과물”이라고 일축했다. 개발자 출신의 한 벤처캐피털(VC) 심사역은 “20년, 40년이 지나도 실현되기 어려운 시나리오”라며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나 정보통신(IT) 산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과대평가하고, 반도체·조선·건설 등 산업의 영향력은 축소해서 보고 있다”고 짚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예측이라는 반론도 있다. 시트리니 리서치 보고서에서는 내년 초 개인의 AI 에이전트(비서) 사용이 보편화하고, 실업자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관해 최병호 고려대 휴먼 인스파이어드 AI연구원 교수는 “인사관리·세무·법무 등 기업의 대부분 행정 처리와 직무를 AI가 대체할 정도의 기술력은 지금도 갖춰져 있다”며 “엔스로픽의 ‘클로드 코워크’ 등 기업용 AI 도구의 확산 속도는 올해 한층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일자리를 얼마나 대체할지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래피얼 보스틱 미 애틀랜타 연은 총재는 지난달 24일 연설에서 “고용주가 이전만큼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구조적 전환기에 잠재적으로 진입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구조적 실업은 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말을 덧붙이면서다. 반면 크리스토퍼 월러 Fed 이사는 “AI는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