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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타임머신] 텍사스 공화국

중앙일보

2026.03.01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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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북미 원주민이 살던 텍사스에 스페인 탐험대가 처음 발을 디딘 건 1528년의 일이었다. 1685년 프랑스가 매터고다만에 식민지를 세웠고 스페인도 경쟁적으로 정착지를 늘렸다. 1718년 스페인은 새로운 정착지 샌안토니오를 만들었고, 1820년 버지니아 주에서 온 모제스 오스틴은 스페인 정부로부터 텍사스주 식민지 개척을 허가받았다. 이듬해 그가 사망하자 아들 스티븐 오스틴이 정착을 주도했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텍사스를 둘러싼 경쟁은 점입가경으로 빠져들었다. 텍사스에 이주한 백인들과 지역 토착 혼혈민들이 멕시코의 지배를 탐탁잖게 여겼던 것이다. 정치적으로 무능한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장군이 쿠데타로 멕시코 대통령이 되고 텍사스의 자치 요구를 강경 진압하자 주민들의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1836년 3월 1일 ‘1836년 회담’을 가진 텍사스인들은 다음날인 3월 2일 독립을 선언했다. 멕시코 입장에서 보면 엄연한 반란이었다. 산타 안나가 원정을 친히 지휘하다 포로로 잡히지 않았다면 텍사스는 독립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독립 전쟁에서 승리하자 텍사스 공화국은 실체를 가진 나라가 됐다. 그해 10월 전쟁 영웅 샘 휴스턴(사진)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845년 국민투표로 미국에의 편입을 결정하고 1846년 2월 19일 공식적으로 미합중국의 28번째 주가 될 때까지, 텍사스 공화국은 10년간 국제적 승인을 받은 독립국가로 존속했다.

벌써 200년 가까운 옛날 일이지만 텍사스 공화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텍사스는 미국의 동·서부와 별개의 전력망을 사용한다. 석유와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기에 언제건 독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 텍사스(Texas)와 탈퇴(Exit)를 합성한 ‘텍시트(Texit)’, 텍사스 분리주의 운동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독자적인 생활과 정체성을 지닌 지역을 통합하는 일은 이토록 어렵고 지난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속도전으로 치러지는 졸속 행정구역 통합을 보면 우려를 감추기 어렵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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