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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혁의 시선] 민주당은 왜 반사법부에 집착할까

중앙일보

2026.03.01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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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혁 정치부장
더불어민주당이 어마어마한 일을 해냈다. 해방 이후 80년 간 유지되어 온 3심제의 틀을 깨고 4심제(재판소원)를 도입했다. 더불어 2030년까지 대법관의 수를 두 배(14명→26명)로 늘리기로 했고, 검사와 판사는 법왜곡 혐의로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살게 됐다.

범죄 혐의자 입장에선 3심까지의 결과가 억울하면 “한 판 더”를 외쳐 볼 수 있게 됐고, 자신을 처단한 판사나 검사에게 수사의 고통과 처벌의 위협을 되돌려 줄 수도 있게 됐다. 범죄 혐의자에게 무기를 얹어준 셈이니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통받으면 안 된다”(윌리엄 블랙스톤)는 사법적 이상에 다가가려는 시도라고 주장해 볼 순 있겠다.

여당, 우려 눈감고 ‘사법 3법’ 강행
‘파기환송 기획설’ 믿음이 동력
야당, 음모론 뿌리 ‘윤’ 절연 못해

그러나 입법 주도자들의 자위적 쾌감은 곧 다수의 비참함과 막대한 사회의 비용으로 치환될 것이다. 정확한 계산은 사법시스템이 마비될 즈음 법경제학자들이 내놓겠지만, 대혼돈은 예정돼 있다. 개개인의 송사는 끝없이 늘어질 것이고, 그 사이 법원 밖의 사회적 갈등은 심화·확산될 게 불보듯 하다. 판·검사직에 대한 선호가 추락하면서 사법서비스의 질도 곤두박질칠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 강경파가 고집하는 보완수사권 폐지가 맞물리면 가공할 마이너스 시너지가 발생할 것이다.

거사 과정에서 162석 거여 내부의 숙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공청회는 유유상종의 장이었고, 법조계와 학계의 우려는 묵살됐다. 지난 26일 법왜곡죄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 중 유일한 반대표를 던졌던 곽상언 의원은 “완성된 법안을 본 건 하루 전 의원총회 때”라고 말했다. 간혹 우려를 드러내는 의원들은 어김없이 강성 지지층의 마녀 사냥에 시달려야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이런 폭주를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제거를 위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3법 통과에 따라 8개 혐의 5개 재판이 중지 상태인 이 대통령이 재판 재개시 법왜곡죄 고발과 재판소원을 무기로 삼을 수 있고, 임기 중 대법관 22명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해 훗날 상고심에 대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아예 이런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검찰을 압박해 공소를 취소시키겠다고 당론을 정한 참이니 야당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럼에도 이런 폭주가 이 대통령을 위한 것인지 심히 의문이다. 이 대통령은 당선 직후 “나의 신상과 관련된 법안은 무리해서 처리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이후로도 사법 개혁과 관련해 ‘숙의’를 요청해 왔다. 이 대통령은 “강박인가 싶을 정도로 성공한 정부를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지난달 9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인터뷰)는데, 사법 대혼란이 이 길에 큰 걸림돌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

3법 폭주의 주역인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최근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는 지난달 22일 출판기념회에서 “지금 하는 일(법사위원장)을 내려놓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조희대 대법원장님이 마음 놓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경기지사 출마 의사를 공식화하는 자리에서 꺼낸 이 말은 “법사위원장 자리를 곧 강성 지지층을 향한 선거운동의 무기로 삼겠다는 뜻”(수도권 중진)으로 읽혔다.

그렇다면 강경파들의 행태가 불만인 의원들은 왜 제동에 나서지 않았을까. 강성 지지층의 닦달만으로는 불충분한 이유를 합리파로 평가되는 한 3선 의원과 대화 중에 알게 됐다. 그는 지난해 5월 1일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이야기를 꺼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모종의 의도를 가지고 내린 판결인 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당선됐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지만, 민주당 다수 의원들의 세계관은 근거 없는 ‘파기환송 모의설’에 갇혀있다.

비이성적이지만 음모론에 취했다는 이유로 민주당 의원들을 비난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의 과학자 마이클 셔머는 ‘음모론이란 무엇인가’에서 대중의 음모론 추종을 걷어내기 어려운 핵심 이유로 어떤 음모론은 현실이 된다는 점을 꼽았다. 국민 모두가 2024년 여름 음모론에 불과했던 ‘윤석열 계엄설’의 실현을 그해 12월 3일 목도하지 않았던가. ‘파기환송 모의설’을 토대로 민주당 의원들은 “법원을 그냥 두면 검찰 공화국을 뛰어넘는 사법 공화국을 시도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공유한다. 윤 전 대통령이 모든 음모론을 정당화할 근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 음모론의 뿌리와 절연하지 않은 채 자멸의 길을 택했다. 이대로면 6월 3일 민주당이 지방권력마저 석권하게 된다. 그때쯤 검찰과 법원은 정치권력을 견제할 기력을 상실할 것이다. 삼권분립이 숨 쉴 공간이 얼마 안 남았다.





임장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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