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왜곡죄, 재판소원제, 대법관 증원 등 ‘사법 3법’이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위헌 논란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 충분한 숙의가 필요하다는 경고는 개혁이란 명분 아래 무시됐다. 여당 주장대로 과연 사법 정의로 가는 이정표일지, 아니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사법 파천황’으로 가는 길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법 3법’ 통과로 헌재 위상 강화
하지만 제도적 신뢰 여전히 취약
개헌 통해 정치적 입김 탈피해야
분명한 것은 우리 사법체계의 최정점을 놓고 다퉈온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중 헌재가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법원 재판까지 위헌 심판 대상으로 포함한 재판소원제로 헌재는 명실상부하게 사법 질서의 최종 심판자 자리에 올랐다. 법왜곡죄의 모호함 역시 헌재의 존재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빈틈’이다. 법이 모호할수록 그 해석을 둘러싸고 정치가 개입할 여지가 커지고, 이를 정리해야 할 헌재의 역할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헌재가 ‘최종 심판자’의 역할에 걸맞은 신뢰와 제도적 기반을 충분히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물론 두 차례 대통령 탄핵 인용을 비롯해 헌법 수호기관으로서 헌재가 수행해 온 역할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예민한 정치적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우리 사회가 극심한 분열과 갈등에 빠져들어 왔다는 사실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그 배경에는 헌재의 구성 방식이 있다.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재판관 3명을 지명·선출하는 구조는 형식상 삼권분립의 균형 장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구조가 ‘정치적 나눠먹기’로 작동해 왔다. 여야는 국회 몫 3석을 두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대통령 몫은 정권 성향을 반영하며, 사법부 몫은 그 중간쯤이다. 지난해 탄핵 심판을 앞두고 벌어진 재판관 임명 난맥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재판관의 임명 배경과 성향이 분석되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이쯤 되면 헌재는 헌법 법정이라기보다 정치의 연장선으로 인식된다.
여당은 사법 3법을 강행하며 독일 사례를 전범으로 들었다. 그러나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연방하원과 연방참사원(상원 격)은 각각 8명의 헌법재판관을 선출하는데, 하원에서는 출석 3분의 2 이상 및 재적 과반 찬성이 필요하며, 상원에서는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이 요구된다. 특정 정당이나 정파가 재판관 구성을 좌우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12년 단임제는 재판관이 정치적 눈치를 볼 유인을 원천 차단한다.
이런 제도적 토대 위에서 독일 헌재는 높은 신뢰를 유지해 왔다. 각종 조사에서 그 신뢰도는 70% 전후로, 국가기관 중 단연 최고다. 반면에 우리 헌재는 탄핵 심판 등 굵직한 정치적 사건에 따라 요동치는 등 가변적 신뢰에 머문다. 실제로 지난해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무렵에는 전국지표조사(NBS)나 한국갤럽 조사에서 50%를 넘겼지만, 하반기 시사IN 조사에서는 40%대 초반으로 내려왔다. 헌재의 권위가 제도적으로 축적된다기보다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출렁인다는 의미다.
헌법재판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띤다. 권력의 한계를 긋고, 다수의 결정을 제어하며, 추상적 헌법 규범을 현실 정치 위에 세우는 과정이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적 재판과 정파적 재판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갈등이 첨예할수록 헌법재판관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객관성과 독립성이 요구된다. 헌재는 단순한 승패의 판정자가 아니라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헌법적 기준을 제시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사법 3법 통과로 헌재의 위상은 분명 올라갔다. 그러나 권한의 확대만으로는 헌재의 권위와 신뢰가 보장되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권한은 오히려 더 큰 정치적 갈등을 부를 수 있다. 이 문제는 이미 법률의 차원을 넘어섰다. 결국 개헌 테이블에 올려야 할 사안이다. 민주당이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사법체계를 정치의 그늘로 밀어넣었다는 시선에서 벗어나려면 이 과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