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실패한 친위 쿠데타’이다. 그래서 현직 대통령이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단죄되는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지귀연 재판장은 지난 2월 19일 선고에서 1649년 잉글랜드 왕 찰스 1세 처형을 윤석열 단죄의 역사적 근거로 인용했다.
영국 런던의 화이트홀 궁전 마당에서 있었던 찰스 1세 참수형은 세계 민주주의 발전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왕이 암살되거나 전사하는 경우는 있어도 재판을 거쳐 사형 집행된 첫 사례로서 “법이 왕 위에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지 재판장은 "주권을 위임받은 의회에 대한 공격은 왕이라 하더라도 반역죄가 성립한다는 개념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라며 윤석열은 대통령이라도 내란죄의 처벌 대상이 된다고 했다. 그는 이 사건의 핵심은 "군대를 국회로 보낸 것이다"라고 몇 차례 강조했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창가엔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왕정(王政)을 폐지, 공화정(共和政)을 열었던 청교도 혁명의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의 석관(石棺)이 있었다.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는, 크롬웰이 죽은 뒤 왕정으로 돌아가자 복위(復位), 아버지를 처형하는 데 관계하였던 이들의 명단(이를 후세에 ‘블랙리스트’라 했다)을 만들어 죽이기 시작했다. 그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크롬웰을 아버지가 참수된 지 12주년 되는 날에 부관참시(剖棺斬屍)한 뒤 장대에 해골을 꽂아 아버지가 재판받았던 웨스트민스터 홀 지붕 위에 20여 년간 전시했다. 해골은 그 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떠돌다가 1960년에야 모교인 케임브리지 대학 경내에 묻혔다.
그래도 역사의 전진을 멈출 순 없었다. 온건했던 찰스 2세를 이은 동생 제임스 2세는 가톨릭 교도로서 개신교 세력과 갈등하다가 1688년 명예혁명에 의하여 밀려났다. 그리고 나고 개신교도인 그의 딸(메리 2세)과 사위(윌리엄 3세)가 공동왕으로 영입되는데 이때 의회가 선포한 것이 세계 민주주의 헌법의 표준이 되는 권리장전이었다. 군대에 대한 의회의 문민 통제권, 조세권, 고문 금지 등이 명시되었다. 그 이후로는 영국에선 쿠데타 등 정변이 없어진다(프랑스는 1961년에도 알제리 주둔 부대가 쿠데타를 시도).
지난 2월 20일 미국 대법원은 6 대 3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난폭한 상호 관세 정책이 헌법 위반임을 확인하며 무효화시켰다. 미국 헌법 제1조 8항은 세금 징수권이 의회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멋대로 이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을 만들 때 영국의 권리장전을 많이 반영했는데 이때 들어간 의회의 조세권이 트럼프를 잡은 것이다. 권리장전에 있던 ‘개신교도 무기 소지권'은 미국 헌법에선 ‘모든 국민들의 무기 소지 권한’으로 명기되었다. 미국에서 아무리 총기 사고가 많이 나도 총기를 금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재판 통해 처형된 최초의 왕 현행범 단죄된 첫 현직 대통령 찰스 1세의 피묻은 헌법의 힘으로 피 흘림 없이 친위 쿠데타 해결
그런데 지귀연 선고문 이전에 찰스 1세를 학술 논문에서 맨 처음 언급한 한국인이 있다. 이승만(李承晩)이다. 그는 1910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논문을 썼다. “미국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중립”이라는 수준 높은 국제법 논문이다. 당시 35세의 이승만은 국제법의 아버지 휴고 그로티우스를 소개하고 영국의 전시(戰時) 중립 정책을 설명할 때 찰스 1세 시대를 다룬다. 유럽 역사의 본류를 논문 주제로 잡은 안목이 놀랍다.
프린스턴은 청교도 혁명 때 크롬웰과 동맹했다가 원수가 되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세력이 18세기 미국으로 건너가서 세운 대학이다. 아담 스미스로 대표되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확산시키고 미국 건국의 지도자들을 많이 양성했다. 미국 헌법 제정을 주도한 제임스 메디슨 대통령이 이 대학 출신이다.
청교도들이 세운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던 이승만은 프린스턴 재학 시절에는 총장이던 우드로우 윌슨(나중에 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면서 자유무역, 시장경제, 공화국 시민의 윤리 함양을 중시하는 학풍에 젖었다. 이승만과 개신교를 매개로 하여 세계사의 본류인 영국과 미국의 민주주의 투쟁사는 우리의 건국과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토마스 제퍼슨은 “민주주의는 피를 마시며 자라는 나무”라고 했고, 이승만은 자신을 ‘제퍼슨주의자’로 규정하기도 했다.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선언서의 가장 핵심적인 문장이 고스란히 대한민국 헌법의 심장으로 불리는 10조에 들어와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다.
후발 국가에서 친위 쿠데타 실패는 내전으로 가는 길목인데 한국은 찰스 1세의 피가 묻은 헌법의 힘으로 피 흘림 없이 해결하고 있다. 세계사의 주류에 올라탄 덕분에 공산주의, 독재자, 전근대성(前近代性)과의 3면 전쟁에서 이기는 중이다. 계몽령 운운하는 극우파의 저항은 역사에 대한 반동이다. 역사는 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