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약으로 카트 꽉 채워도 3만원, 깜짝"…전국에 퍼진 이런 풍경

중앙일보

2026.03.01 12:00 2026.03.01 13:33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1일 서울 용산 전자제품 쇼핑몰 내 '창고형 약국'. 한 고객이 카트 가득 약을 담고 쇼핑 중이다. 채혜선 기자
"소문 듣고 왔는데, 이렇게 약을 많이 담아도 3만원도 안 해요. 깜짝 놀랐어요."
1일 오전, 서울 용산 전자제품 쇼핑몰의 '창고형 약국' 계산대를 막 빠져나온 40대 주부 A씨는 한 뼘이 훌쩍 넘는 긴 영수증을 펼쳐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7일 문을 연 이 매장은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소염진통제 1500원"이란 글이 퍼지면서 화제를 모았다. 동네 약국에서 3000원 안팎에 팔리는 제품의 절반 수준이다. 맘 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다른 약도 기존 약국보다 20~30% 저렴하다"는 후기가 여럿 올라왔다.

공휴일인 이날, 800평 규모의 약국 안은 150명 넘는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특히 상비약인 진통제·소화제·감기약 코너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진열대를 훑어본 뒤 휴대전화로 가격을 검색하는 모습이 반복됐다. 마트처럼 카트를 끌고 오가던 방문자들 사이에선 "이 약이 정말 1500원이네", "약국이 아니라 (생활용품 판매점) 다이소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카트에 같은 소염진통제 제품을 10개 이상 담은 50대 김 모 씨는 "어차피 집에서 계속 먹을 약이고, 값이 싼 김에 주변에 나눠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장이 크고 손님이 몰리다 보니 약사들의 복약 지도는 원활하지 않았다. 기자가 해당 약국을 세 차례 드나들며 약을 샀지만, 별도 복약 지도는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일반 약국에서 오남용 우려로 판매 개수를 제한하는 '슈도에페드린'(코막힘 완화용) 성분 약도 이렇다 할 안내가 없었다. 이곳 약사는 "구매 제한이 따로 없다"고 했다.

작년 첫 등장 이후 급증, 트렌드는 마트 입점?
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경기도 성남에서 처음 등장한 창고형 약국은 이후 빠르게 늘어 현재 30여곳에 이른다. 박리다매 방식의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소비자를 끌어모은 결과, 9개월 만에 전국으로 확산한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서도 관련 영상이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약사법 제21조(약국의 관리의무)
①약사 또는 한약사는 하나의 약국만을 개설할 수 있다.
②약국 개설자는 자신이 그 약국을 관리하여야 한다. 다만, 약국 개설자 자신이 그 약국을 관리할 수 없는 경우에는 대신할 약사 또는 한약사를 지정하여 약국을 관리하게 하여야 한다.
약사법에 따라 약국은 약사 또는 한약사만 '1인 1곳'으로 열 수 있다. 창고형 약국도 규모가 크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약사가 개설·운영하는 구조다. 초반엔 별도 매장 등을 세웠던 것과 달리, 최근엔 쇼핑몰이나 대형마트 안에 입점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1일 서울 용산 전자제품 쇼핑몰 내 '창고형 약국'에 감기약이 쌓여있다. 채혜선 기자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많은 인파가 몰리는 대형마트에 입점하는 창고형 약국이 속속 생기고 있다. 오프라인 손님이 줄어든 마트가 약국 개업을 선호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면서 "약이 장사의 도구로 변질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라고 말했다.

창고형 약국이 빠르게 늘면서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약 오남용 우려와 국민 편의 확대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복약 지도와 관련해 어떤 방식이 적절할지 논의 중이다. 복약 지도 의무화, 특정 약 구매 제한, 청소년 구매 제한 등을 두고 여러 의견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에도 창고형 약국 관리 강화를 담은 관련 법안 6건이 발의돼 있다. 다만 이들 법안은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보건복지위에 계류돼 있다.

전문가들은 편리함 등을 중시하는 유통 환경의 변화 등에 맞춰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는 "플랫폼이 다변화한 환경과 국민 접근성을 고려해 정부는 약이 제대로 사용되는지, 폐의약품은 적절히 수거·처분되는지 등 의약품 전반의 관리 체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새로이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선 다양한 의약품을 저렴하게 접할 수 있어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일반 약국 입장에선 지역 골목상권과 대형마트의 경쟁 구도처럼 인식될 수밖에 없다. 세밀한 복약 지도 등 약국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채혜선([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