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후 본격화한 더불어민주당의 ‘사법 개편’ 작업이 완료됐다. 여당은 지난달 26일부터 본회의를 사흘에 걸쳐 잡고 법안을 '살라미'식으로 통과시키며 사법 3법(법왜곡죄 도입·재판소원법·대법관 증원법)을 처리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또 썼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8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사법제도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조희대 대법원장)”이라는 지적에도 파급 효과에 대한 검토 없이 법안이 통과돼 후유증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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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하다 말고 경찰서 가서 법리 설명해야 하나”
법왜곡죄(형법 개정안)는 “문명국의 수치(이석연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장)”라는 비판 속 가장 먼저 본회의를 통과했다. 수사·재판 현장에서는 법왜곡죄가 ‘악성 민원’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1일 “어떤 사건이든 결과에 불만족하는 당사자는 있다. 이제 재판하다 말고 경찰서에 가서 ‘이 법리를 적용했다’ ‘이 판례를 참고했다’라며 설명을 해야 하는 건가 싶어 맥이 빠진다”고 했다.
법원·검찰뿐 아니라 경찰도 법왜곡죄 도입에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청은 “검찰과 법원에서 법 적용이 달라진 경우 수사한 경찰관을 상대로 무분별한 고소·고발 남용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왜곡죄가 ‘도돌이표 수사’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고법판사는 “만일 1심에서 유죄가, 2심에서 무죄가 나온다면 당사자는 수사한 경찰·검찰과 1심 판사를 다 고소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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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경매·형사 재판 효력 모호…혼란 예상
재판소원법(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은 민사·형사·가사·행정 등 개별 재판의 효력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없어 혼란이 예상된다. 법안은 확정판결을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헌법재판소에 판결 취소를 구할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이혼 판결이 확정된 뒤 재판소원으로 판결이 취소될 경우 그 사이에 한 재혼의 효력은 유지되는지 등이 불명확하다. 법원의 경매 절차나 회사의 합병·신주발행 효력이 재판소원으로 뒤집힐 경우 복잡해질 재산관계를 어떻게 정리할지도 불투명하다. 확정판결이 늦어질수록 임차인이나 임대인에게 금전적 이득이 되는 명도소송이나 보증금 반환 소송에서는 재판소원이 ‘버티기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야당에서는 재판소원법이 ‘대통령 방탄법’이라고 비판해왔다.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된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향후 재판소원을 통해 무죄로 바뀔 여지가 있다는 점을 문제삼은 것이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확정판결이 나왔을 때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면 헌법소원을 낼 수 있을 거로 보인다”며 “이 대통령에게는 보험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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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이 대법관 22명 임명
2028년부터 3년에 걸쳐 대법관을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도록 한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법조계의 속도 조절 요구가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는 2030년 6월까지 모두 22명의 대법관 임명권을 갖게 된다. 조 대법원장은 2027년 6월 정년퇴직 예정으로, 노태악·이흥구·천대엽 대법관의 후임 3명은 조 대법원장 임기 중 임명된다. 나머지 19명은 후임 대법원장 체제에서 임명하게 된다. 이 때문에 법안은 정치적 목적으로 대법원 구조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코트 패킹(court packing)’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장 3일자로 퇴임하는 노태악 대법관의 후임 인선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통상 청와대와 대법원은 대법관 후보 제청 전 후보를 사전 조율해왔는데, 대법관후보 추천위의 추천 후 한 달 넘게 인선 소식이 없으면서 대법관 공백이 불가피해졌다. 최악의 경우 조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하는 대법관을 국회가 승인하지 않거나,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노 대법관 후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으로 내정된 천대엽 대법관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사법행정을 총괄해 온 책임자”라며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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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조희대 즉각 사퇴” 요구에도…카드 없는 법원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이 일방적인 사법 개편에 반발하며 지난달 27일 사의를 밝힌 뒤로 여권에서는 조 대법원장을 향한 공세를 높이고 있다. 이날 정청래 대표는 “당신은 대법원장으로서 자격이 없으니 사퇴하라”고 요구했고, 이성윤 최고위원은 조 대법원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탄핵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여권에서는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 폐지 추진도 거론된다.
대법원은 오는 12~13일 이틀에 걸쳐 전국법원장회의 간담회를 연다. 매년 3월 인사 차원에서 열리는 정기 간담회이지만, 지난달 25일 전국법원장회의의 연장선에서 사법3법의 후속 조치를 논의할 전망이다. 다만 법원 안팎에서는 “이미 때를 놓쳤다”는 낙담이 짙다. 또다른 부장판사는 “지난해 법안이 발의됐을 때 제대로 대응했어야 했는데 적기를 놓친 것 같다"며 "이미 법안들이 통과돼 마땅한 대응카드가 없고, 사법이 망가지는 건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