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정권교체’ 도박에 시동을 걸었다. 37년간 철권통치를 하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함께한 군사 작전 개시 15시간 만에 암살하면서다. 하지만 이란 국민을 향해 하메네이의 죽음을 “조국을 되찾을 가장 큰 기회”라고 외친 트럼프의 꿈은 신정체제 붕괴에 머무르지 않는다.
궁극적 목표는 중동 질서 재편이다. 구체적으로 트럼프 1기 때 자신의 최대 외교 업적인 ‘아브라함 협정’의 완성이다. 2020년 이스라엘이 아랍에미리트·바레인·모로코와 외교 관계를 맺는 걸 도운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를 협정의 ‘화룡점정’이라 생각한다.
이를 통해 중동 내에서 이스라엘-사우디를 축으로 하는 안보 구도를 만드는 걸 꿈꾼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반미 선봉인 이란마저 친미 정권이 들어서 아브라함 협정에 들어온다면, 트럼프는 어느 미국 대통령도 못한 미증유의 영웅 서사를 쓸 수 있다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핵무기 보유 차단에까지 성공한다면 2015년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 맺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완벽히 뛰어넘는 성과를 냈다고 자랑할 수도 있다.
경제적 목적도 있다. 세계 2위 천연가스, 세계 4위 석유 매장량 등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이란이다. 인구 9000만의 거대시장이 열린다면 전쟁을 반대했던 마가(MAGA) 등 미국 내 핵심 지지층 마음도 얻을 수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압송한 데 이어 이란마저 장악하면 이들 국가에서 싼값에 석유를 사 오던 중국도 간접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
이는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가야 가능하다. 현재로선 이란 내에서 미국과 합이 맞는 정부보단 하메네이 죽음을 ‘순교’로 여기며 역대 최대 보복 작전을 천명한 강경파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를 중심으로 정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미 싱크탱크 외교협회의 린다 로빈슨 선임연구원은 “하메네이 제거가 정권교체는 아니다. IRGC 자체가 곧 이란 정권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럴 경우 “핵이 없어 미국에 당했다”며 이란의 핵보유 의지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란이 탄도미사일 보복,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이어가고 예멘 후티반군·이라크 친이란 민병대 등 대리 세력도 동원할 경우 중동 안보 환경이 장기간 흔들릴 수 있다.
이란 정권이 흔들릴 경우엔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다민족 국가로 종파·종족·경제 이해관계가 갈리는 이란에서 정권 통제력이 약화할 경우 혼란이 커질 수 있다. 인남식 교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란의 발칸반도화”라며 “발루치·쿠르드·아제리 등 소수민족이 들고 일어나면 2011년 이후 13년간 내전을 벌인 시리아처럼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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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전 발목 잡히면 ‘이라크 시즌2’ 우려
관건은 트럼프의 다음 전략이다. 트럼프는 작전 개시 후 “2~3일 후 (공격을) 그만둘 수도 있고 장기전으로 (이란) 전체를 장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단기 타격으로 정권이 무너지지 않을 경우 전력을 추가 투입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2003년 이라크 전쟁의 아픈 경험을 재연할 위험이 있다. 미국은 당시 대량살상무기를 빌미로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아냈지만, 8년간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이후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준동까지 겪어야 했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민심을 반영한 ‘온건 IRGC’의 등장이다. 하메네이 죽음으로 성직자 영향력이 낮아진 틈을 타 현실적 이익을 중시하는 IRGC가 생존을 위해 민심을 반영한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는 가능성이다. 이미 이란 내 여론에서 ‘반미’는 철 지난 구호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은 “이란 인구 9000만 중 75%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태어난 젊은 층으로 이들은 ‘왜 핵 때문에 제재를 받아야 하느냐’는 문제의식이 강하다”며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IRGC가 ‘세속주의+핵 포기’를 선택하는 게 어렵진 않다”라고 전망했다.
마두로 압송 후 기존 정권 인사를 기용해 체제를 유지하는 ‘베네수엘라 모델’을 시도한 미국도 이를 반길 수 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미국으로서도 이란 정치 체제가 분열돼 이란 정부가 가진 핵 물질과 탄도미사일이 통제 불가능한 세력에 넘어가는 것은 악몽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전쟁 후 중동 세력 구도 변화도 감지된다. 성일광 서강대 교수는 “최대 라이벌인 이란의 약화로 중동 내 유일 핵보유국인 이스라엘 위상은 더 높아졌다”며 “이란의 이슬람 수호자 지위는 튀르키예가 대신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