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소년중앙] 국내 최초 전기비행기 인증…새로운 항공서비스 개척 중이죠

중앙일보

2026.03.01 13:0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며 많은 직업이 AI로 대체되는 세상입니다. 더 이상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에요. 이런 시대엔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요?” 비행기를 좋아하던 아이는 승무원이 됐고 조종사가 됐습니다. 코로나19로 취업문이 막히자 스스로 일을 찾아 나섰죠. 글로벌 우주항공기업에서 비즈니스를 배운 뒤 전기비행기항공사 설립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품고 창업에 나섰어요. 정찬영(38) 토프모빌리티 대표 이야기입니다.

2024년 10월, 대구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모빌리티 엑스포(DIFA) 박람회에서 전기비행기와 함께 포즈를 취한 정찬영 토프모빌리티 대표.
충남 공주에서 보낸 찬영씨의 어린 시절은 우울했죠. 어려운 가정환경 속 세상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컸던 찬영씨에게 비행기는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왠지 행복할 것만 같았죠. “중2 때 어머니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셨어요. 그때 제 바람은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버는 거였죠. 고등학교에 가면 직업훈련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고, 비행기를 좋아했으니 공군정비사를 목표로 했습니다. 대학을 안 나와도 할 수 있고 관사도 제공되니 먹고 사는 데 문제는 없겠다고 생각했죠.”

고2 때부터 직업훈련센터에서 비행사 정비를 배우며 영어 교재를 보기 위해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겨울방학 때 실습에 나서자 생각보다 정비 일은 손에 맞지 않고 결국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인생 첫 번째 벽에 부딪히며 수능공부를 시작했지만, 남들은 최소 3년 이상 하는 공부를 1년도 채 못했으니 결과가 좋을 리 없었죠.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20세부터 경기도 오산에 있는 에어컨 공장에서 일했어요. 돈을 벌기 위해 주말엔 백화점 아르바이트도 병행했죠. 이듬해인 2008년 12월엔 군 문제 해결 겸 육군 군사경찰에 지원했습니다. BMW·할리데이비슨 같은 대형 모터사이클을 이용해 국내외 VIP 기동 경호부터 군기 유지 및 순찰 업무를 수행하는 최정예 기동대원으로 체력·가족관계 등 세밀한 검증을 거쳐 선발하는 일종의 특수직이죠.

“서울 사당동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 기동중대에서 육군 군사경찰로 복무하면서 장관이나 국회의원, 장성급 같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막연하게 그들의 삶이 편안하고 좋아 보였거든요. 그래서 대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제주항공 승무원으로 일하던 2017년 7월, 제주공항에서 야간비행을 마치고.
군 복무와 편입공부를 병행한 그는 2010년 1월 제대 후 비행기 승무원이 되고 싶어 관광학과나 항공학과가 있는 대학으로 첫 편입시험을 봤는데요. 결과는 불합격, 수능을 봐서 대학에 가는 것 이상으로 편입의 문은 좁았죠. 이후 낮엔 영화관, 밤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두 번의 도전 끝에 2013년 가천대 관광경영학과 3학년 편입에 성공했어요.

남들보다 진학이 늦었기에 대학에서는 그만큼 열심히 대외활동에 참여했죠. 2013년 대한적십자사 주최 대학생 국토대장정 행사 ‘제1회 희망풍차 SR 나눔로드’ 대표로 활동하면서 주목을 받았어요. KBS에 국토대장정을 소개하는 내용이 방영되고 대학 홍보매체에도 찬영씨의 이야기가 소개되면서 이를 접한 가천대 이길여 총장으로부터 격려의 장학금과 6개월의 미국 어학연수 기회도 받았죠.

졸업 후 2015년 3월 저비용항공사(LCC) 이스타항공 승무원으로 취업한 그는 1년 후 제주항공으로 이직했고, 2018년에는 경험에 기반해서 승무원들의 삶과 현실을 소개한 책 『낭만비행』을 내기도 했어요. 비행 관련 직업을 선망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책 출간으로 또 한 번 주목받은 찬영씨는 제주항공 경영진 요청으로 채용업무 등 다양한 항공사 일을 경험하게 됐죠. 회사에 가기 싫은 적이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매일매일이 즐거웠어요.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은 허전했고, 10년 후 모습을 상상해보니 과연 내가 그때도 승무원의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죠.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많이 읽었어요.”
2018년 10월, 항공운항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학생 리쿠르팅 채용설명회에서 설명하는 모습.
조종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는 항공사 두 곳에서 4년간 일하면서 퇴직금 포함 1억원을 모으자 2019년 8월 과감히 퇴사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비행조종학교에 가기 위해 실리콘밸리로 향했죠. 구글·페이스북·애플 같은 빅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궁금했고 세상의 변화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싶었거든요. 산호세에 머무르며 주말엔 테크기업 박람회 아르바이트도 하며 1년 4개월이 걸려 비행조종사 자격증을 땄죠. 8개월간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다가 이후 애리조나주 피닉스로 옮겼는데, 산호세의 주거비용이 워낙 비싼 데다 총 비행 300시간 기준을 더 빨리 채우기 위해서였죠.

미국 비행조종사 자격 취득 과정은 총 4단계가 있습니다. 1단계는 자가용조종사(PPL·Private Pilot License), 2단계 계기비행증명(IR·Instrument Rating), 3단계 사업용조종사(CPL·Comercial Pilot License), 4단계 육상다발한정(MEL·Multi Engine Land) 등이죠. “미국 항공사에는 여러 등급이 있어요. 비행기 규모에 따라 초소형·소형·대형까지 다양하죠. 그런데 우리나라엔 수백 명을 실어나르는 대형 항공사밖에 없죠. 조종사 자격증 공부와 동시에 미국의 항공산업도 꾸준히 공부했습니다. 미국에선 드론택시라는 미래항공 수단이 한창 개발되고 있었고 향후 항공산업이 부가가치가 엄청난 산업으로 발전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에도 조만간 택시 같은 비행기, 소수 인원이 빠르게 탈 수 있는 그런 비행기가 도입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항공기 조종사 훈련에 매진했던 2019년 모습.
귀국한 찬영씨는 조종사로 항공사에 취업하려 했지만 코로나19라는 인생 두 번째 벽을 마주했어요. 코로나19로 전 세계 항공사 조종사들이 대거 휴직하거나 실업자가 되는 형편이었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찬영씨의 눈에 제주도가 상용화를 목표로 드론택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는 뉴스가 들어왔어요. 그 길로 제주도를 찾아가 드론택시 사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제안했죠. 승무원 경력과 미국 조종사 자격증 취득 및 *UAM 관련 공부를 충분히 한 찬영씨를 눈여겨본 건 마침 제주도에 제안하러 온 *켄코아에어로스페이스(이하 켄코아) 담당자였어요. 이번엔 벽 대신 생각지도 못했던 문이 열리며 2021년 7월, 억대 연봉 대우를 받으며 글로벌 우주항공 기업에 스카우트됐죠.

“항공 관련 사업에는 흔히 아는 여객이나 화물 운송 외에도 유지관리나 개조, *MRO 등 다양한 분야가 있습니다. 켄코아에서 사업 총괄을 하면서 비행기로 어떻게 돈을 버는지 항공산업의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알게 됐어요.” 덕분에 찬영씨의 경력은 ‘비행기’ 관련 모든 일을 경험해보는 것으로 채워졌습니다.
정찬영 대표는 2023년 7월 미국 오시코시 에어쇼서 실물 전기비행기와 다양한 미래항공 모빌리티의 발전을 눈으로 확인했다.
UAM은 미래산업이다 보니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투자에 나서면서 컨설팅 요청도 많았죠. 그러나 제주도가 추진하던 드론택시의 경우 허가·인증 절차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사업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어요. 찬영씨는 2년 만에 다시 진로 고민을 하게 됐죠. 마침 코로나19가 진정되던 2023년 초라 항공사의 채용문도 열리기 시작하며 3가지 선택지가 생겼어요. 조종사로 취업할지, 켄코아에 머무를지, 창업할지 고민이 깊어졌죠.

“우리나라는 아직 드론택시 상용화 전이지만 유럽에서는 활주로에서 운행하는 전기비행기가 상용화되고 있었어요. 제가 우리나라에서 먼저 이 사업을 시작하면 향후 상용화됐을 때 가장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창업을 결심한 그는 궁극적으로 ‘전기비행기항공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죠. 2023년 5월 켄코아를 퇴사하고 전기비행기를 구입하기 위해 전기비행기로는 세계 최초로 인증을 받은 슬로베니아의 *피피스트렐(Pipistrel)로 갔죠. 조종사 자격을 갖고 켄코아에서 항공 관련 비즈니스를 했으며 한국의 지자체와 드론택시 사업도 추진했던 이력을 바탕으로 설득하고 또 설득한 찬영씨는 2023년 7월 모기업인 텍스트론 측으로부터 미국 오시코시에서 열리는 에어쇼에 오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비행기를 본 그 자리에서 계약을 체결한 그는 서울 홍대 인근 공유오피스에서 토프모빌리티 창업에 나섰죠.
2023년 7월, 미국에서 전기비행기 도입 계약을 진행하면서 제조사인 텍스트론 담당자(오른쪽)와 함께.
“전기비행기 1대가 3억원쯤 하다 보니 초기 스타트업에겐 굉장한 부담이에요. 하지만 저는 이 사업을 하려면 꼭 비행기 실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20~2024년 수많은 기업이 말로는 UAM 사업을 한다면서 투자를 받고 실패하는 사례를 지켜보며 다짐했죠. 만약 내가 창업한다면 꼭 전기비행기 실체를 보여주겠다고.”

이후 첫 투자를 받은 2024년 3월까지는 매 순간이 고비였습니다. 전기비행기를 국내로 들여오는 일, 국토교통부(국토부)에 전기비행기 운행사업 인증을 받는 일, 그리고 투자유치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풀리지 않았죠. 슬로베니아에서 구매한 비행기는 배에 실어 45일 내에 홍해를 거쳐 가져와야 했지만, 해적 때문에 6개월 동안 오도가도 못했어요. 결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을 우회하는 항로로 2024년 4월 한국에 들여왔죠.

창업 후 8개월간은 투자를 받지 못했습니다. 2024년 2월 임팩트 투자사인 소풍벤처스의 데모데이에서 합격해 투자 검토를 받았지만 9인승 비행기 도입이 너무 늦다는 이유로 반려됐죠. 그러나 3월엔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7월엔 소풍벤처스의 재고로 소풍벤처스·넥스트드림엔젤클럽에서 시드투자를 받을 수 있었어요. 10월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의 팁스사업에 선정돼 3년간 최소 5억원(상용화까지 7억원)의 사업화 자금을 지원받게 됐고요.
정찬영 대표는 2024년 2월, 소풍벤처스 데모데이에서 토프모빌리티의 미래항공 모빌리티 사업을 발표했다.
국토부 인증을 받는 과정도 인증 규제 안전관리 등 과제로 첩첩산중이었습니다. 국토부도 처음 시도하는 사업이다 보니 유럽·미국 등의 선례 검토에 시간이 걸렸어요. 끈질긴 소통 끝에 2025년 11월 23일 국내 항공 역사상 최초 전기비행기 인증을 받았죠. 2025년에는 30억원 정도 매출을 올리는 등 성과를 내며 자신감을 얻은 참에 국토부로부터 ‘실제로 사업을 해도 문제가 없다’는 규제 확인서를 받아 2026년에는 실제로 전기비행기 운행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항공산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서비스 모델을 만들 계획이에요. 육지 교통수단의 경우 예전엔 버스·택시만 있었지만 지금은 카카오택시·쏘카·킥보드·전기자전거 등 다양한 서비스 모델이 생겼죠. 그런데 항공의 경우 우리나라는 정해진 공항에 가서 수백 명이 타는 비행기말고는 선택지가 없어요. 토프모빌리티는 항공서비스 모델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선구자로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회사 홍보영상을 만들기 위해 2024년 4월 수색비행장에서 전기비행기 충전 장면을 촬영했다.
찬영씨는 자신이 이 분야 최고 전문가, 즉 대체 불가능한 존재임을 자부해요. 승무원으로 항공운항 서비스를 해봤고 조종사 자격이 있으며 지자체의 UAM 사업 컨설팅과 켄코아에서 전략기획까지 두루 경험한 데다 항공대학교 대학원 미래항공학과 수료(2025년 2월)로 학문적 소양까지 갖췄기에 가능한 자신감이죠. 청소년들에게 하는 조언 역시 거침없었어요.

“좋은 성적을 받아 의사가 되거나 대기업에 가는 것을 성공이라 정의하던 시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의사는 물론 변호사·회계사 등 대다수의 직업이 AI로 대체될 시대엔 결국 스스로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 해요. 때론 사회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밑바닥부터 한 단계씩 도전하고 성취해 나가다 보면 그 일에 있어서만큼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UAM(Urban Air Mobility·도심항공교통): 전기 기반 수직이착륙기(eVTOL)를 활용해 도심 교통 체증을 해결하는 3차원 공중 교통 체계.

*켄코아에어로스페이스: 2013년 설립된 경남 사천 기반의 글로벌 항공우주 전문 기업. 항공기 부품 제조, 여객기-화물기 개조(P2F), 항공 원자재 공급 및 MRO 사업을 주력으로 하며 보잉·에어버스·블루 오리진·스페이스X 등과 거래하는 Tier 1 공급사로, UAM 등 미래 항공 사업도 추진한다.

*MRO: 항공기의 안전 운항을 위해 정비(Maintenance), 수리(Repair), 분해조립(Overhaul)하는 모든 활동 및 관련 산업으로 항공기 수명주기비용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국내에서는 인천국제공항을 중심으로 육성 중인 미래 고부가가치 산업.

*피피스트렐(Pipistrel): 전기비행기로는 최초로 인증을 받은 슬로베니아의 전기항공기 분야 선두주자. 2022년 3월 미국 항공우주 기업 텍스트론(Textron)에 인수돼 eAviation 부문으로 전환됐으며, 텍스트론은 전기 추진 항공기 기술을 강화하고 eVTOL(전기 수직 이착륙기) 개발 및 생산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김현정([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