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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AI시대, 사람의 기록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중앙일보

2026.03.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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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부터 나무·천·종이·필름·디지털…진화하는 기록매체에 담긴 것은

우리는 매일 기록을 남깁니다. 수업시간에는 필기하고, 휴대전화로 사진과 영상을 찍는가 하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땐 메모 앱을 이용하죠. 이처럼 기록은 '기억을 대신하는 역할'을 해요.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왜곡되기 쉽지만, 기록은 그 순간을 보다 정확하게 붙잡아 두죠. 또 시간이 지나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해주고요. 일기 한 줄, 사진 한 장, 영상 한 편이 모여 개인에게는 삶의 흔적이 되고, 사회에는 역사와 증거가 됩니다. 각종 기록 매체는 바로 이 기록을 가능하게 만드는 그릇이에요. 어떤 매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기록의 방식과 양, 남는 기간까지 달라지죠. 이에 소중 학생기자단이 서울 서초구에 있는 기록매체박물관에 방문해 기록 매체의 변화와 발전에 대해 들여다봤습니다.
기록매체박물관에 가다

기록매체박물관에 들어서자 사람 얼굴 모습을 한 커다란 조형물이 소중 학생기자단을 맞이했습니다. "어떤 모양 같아요?" 국립중앙도서관 자료보존연구센터 박소연 학예연구사(이하 학예사)가 묻자 "얼굴 모양이요" "사람 아닌가요?" 등 저마다 의견을 말했어요. "다들 잘 관찰했네요. 학생기자단 여러분 말대로 이 조형물은 사람의 얼굴을 본 떠 만든 작품 '책 속의 얼굴'이에요. '인간의 최초 기억은 뇌의 해마에서 시작된다'는 점에 착안해, 개인의 기억이 인류의 기록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기록 여정의 출발점인 셈이죠."

박소연 학예연구사는 인쇄술 발전으로 소수 계층에서만 공유된 지식이 대중화됐다고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설명했다.
기록매체박물관 전시공간은 '기록 매체, 문명을 깨우다' '기록 매체, 세상을 담다', '디지털 기억 시대, 컴퓨터와 전자 매체의 등장' 총 3개 섹션으로 나뉘어요. 차례대로 둘러보자고 제안한 박 학예사는 "인류가 바위·점토판 같은 외부 매체에 기록하기 시작하며 말로 전해져온 지식이 체계적으로 축적됩니다"라며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소개했죠.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와 인류의 포경 활동을 묘사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으로 제작 시기는 신석기시대 후기~청동기 시대 초기로 추정해요. 이를 통해 당시 자연 모습 등을 본뜬 그림이 문자 기능을 했음을 알 수 있었죠.

"선사시대 기록은 말·몸짓 같은 언어로 시작해, 뼈·돌·바위·점토판 등에 그림을 새기며 점차 문자로 발전하게 됐고 이런 과정을 통해 종이와 인쇄술이 발전하게 됐다고 해요." 박 학예사 설명처럼 사회가 발전하면서 기록 매체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났습니다. 나무·뼈와 같은 자연 자원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글자를 쓰기가 어렵고 실용적이지 않았죠. "이런 불편함 때문에 이집트에서는 식물을 이용한 기록 매체인 파피루스를 만들게 됐어요. 파피루스 기록은 물론 휴대하기도 간편했다고 하죠. 또 중국에서는 누에고치에서 비단 실과 솜을 뽑아내고 남은 것이 엉켜 얇게 된 모습에 착안해 종이를 발명했는데, 이렇게 발전한 종이와 인쇄술은 지식 확산과 정보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아요."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와 인류의 포경 활동을 묘사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이다.
"만약 미래에 종이책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요?" 서진 학생기자가 묻자, 박 학예사는 “종이책이 사라진다고 해서 도서관의 본질적인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도서관의 핵심 기능은 매체의 형태와 관계없이 지식을 수집·보존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이죠. 오히려 종이책 이후의 시대, 국립중앙도서관은 국가 차원의 디지털 지식 인프라를 책임지는 중심 기관으로서 그 역할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해요. 나아가 디지털 기록의 장기 보존과 지속적인 접근성 유지, 디지털 격차 해소, 그리고 빅데이터 환경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선별·연결하는 기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고요”라고 강조했죠. 기록 매체의 역사가 보여주듯, 새로운 매체가 등장한다고 해서 기존 매체가 즉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종이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비중이 줄어들 것이며, 그 과정에서 도서관은 종이와 디지털을 아우르는 모든 기록을 보존하는 ‘기억의 저장소’로서 역할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죠.

기록 매체는 오랫동안 인간의 생각을 담고 전파하는 도구로 발전하면서 많은 양의 지식을 생산해냈는데, 통일 신라 때 만들어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이에 해당해요. 현존하는 목판 인쇄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인정하는 인쇄 강국으로 이끌어줬다고 평가받죠. "1613년 내의원에서 목활자로 인쇄·간행한 허준의 『동의보감』은 중국과 조선 의학의 핵심을 잘 정리한 대중 의학 서적으로 일찍이 국제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또 납 활자 인쇄술이 도입된 이후 생겨난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 '한성순보'는 서양의 신식 문물과 지식을 국내에 소개하는 역할을 했고요."
박서현·전서진 학생기자와 김리현 학생모델(왼쪽부터)이 서울 서초구에 있는 기록매체박물관에 방문해 기록 매체의 변화와 발전에 대해 알아봤다.
근대 이전까지 지식은 소수 계층 사이에서만 공유됐어요. 인쇄술의 발전으로 점차 대중화가 이루어지다 과학의 발전으로 생겨난 음향·영상매체 등 새로운 기록 방법을 사용하면서 더욱 다양한 계층이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됐죠. 두 번째 섹션 '기록 매체, 세상을 담다'에서는 많은 사람이 과거보다 쉽게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진과 녹음, 비디오 등의 다양한 기록 매체 플랫폼을 만나볼 수 있어요.

"종이와 같은 아날로그 매체에서 사진·녹음 등으로 기록 방식이 바뀌었는데,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리현 학생모델이 물었습니다. "과거 바위·점토판 등에 새긴 기록에서 문자의 발명, 종이와 인쇄술의 확산으로 이어지며 지식은 더 많이 축적되고 공유될 수 있었어요. 이후 현실을 보다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남길 수 있는 사진·필름·음성 같은 기록 방식으로 확장됐으며 디지털 기록 매체의 등장은 기록의 양과 속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죠." "종이부터 사진·필름·비디오 등의 기록 매체는 어떻게 보관하나요?" 서현 학생기자의 질문에 박 학예사는 "아날로그 기록 매체는 온도·습도·빛과 같은 환경 관리가 가장 중요해요. 종이 자료와 필름은 장기 보존을 위해 전용 보존 서고에서 관리하며,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디지털 대체 자료를 병행해 활용하죠"라고 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과 다양한 디지털 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기억 시대'로 발걸음을 옮긴 박 학예사는 "여러분이 평소 많이 접한 기록 매체를 만나볼 수 있는 섹션입니다"라며 컴퓨터에 의한 기록 특징을 설명했죠. "디지털 정보 처리의 방식으로 작은 크기 매체에 많은 양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게 컴퓨터 기록의 특징이에요. 필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검색하고 수정하며 다양한 정보와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죠. 특히 아날로그 매체와 달리 정보를 대량으로 복제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세계 곳곳에 순식간에 전송도 가능해졌고요."
지금도 주변에 흔한 기록 매체인 종이의 발전에 관해 설명하는 박소연(맨 왼쪽) 학예연구사.
가정이나 학교·회사 등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는 1975년 등장했죠. 미국에서 유학을 마친 이용대 박사가 국내로 돌아와 직원 7명과 자본금 1000만원을 들여 삼보컴퓨터를 설립한 게 그 역사라며 박 학예사가 1981년 개발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소개했습니다. "이 컴퓨터는 청계천에 있는 조그만 사무실에서 개발된 최초의 국산 개인용 컴퓨터인 SE-8001 모델인데요. 주로 기업의 회계·관리용으로 사용했다고 해요." 개인용 컴퓨터 발전은 기록 매체와 기록의 생성·저장·검색·유지 방식의 혁신을 촉진했다고 평가받습니다. 특히 컴퓨터가 ‘정보를 디지털로 표현·처리·보관’하는 기술 중심의 학문이 되면서 기록 매체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될 수 있었죠.

"컴퓨터로 기록이 쉬워지면서 기록이 너무 많아지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남을 가치가 있는 기록'은 무엇인지" 서현 학생기자가 궁금해했죠. "보존 가치가 있는 기록은 반드시 유명하거나 완성도가 높은 기록만을 의미하진 않아요. 한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사람들의 일상, 생각과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기록 역시 중요한 역사 자료가 됩니다. 사소해 보이는 기록이라 하더라도 당시의 문화와 환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필름 편집기·재생기는 과거 기록 매체 중 핵심 장비였으나 디지털화·온라인 플랫폼이 발전하면서 그 기능이 보존·이용 중심으로 변화했다.
개인용 컴퓨터 보급이 본격화됨에 따라 e메일·전자문서 등 다양한 디지털 기록 매체가 증가했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정보를 더 쉽게 생성·공유할 수 있게 되며 우리는 유례없는 기억의 풍요를 누리고 있죠. 컴퓨터에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남긴 기록은 서로 연결되고 분석돼 새로운 정보로 재탄생하는데, 이를 빅데이터라고 합니다. 최근 급속도로 발전 중인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이 이에 해당하죠.

리현 학생모델이 "학교에서도 전자기기로 기록하는 학생이 많아졌는데, 이러한 기록 매체 발전이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라고 질문했죠. 박 학예사는 "요즘 청소년들은 종이보다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세대로, 학교 현장에서도 전자교과서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기록 방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어요. 이는 학습의 효율성과 접근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다만 기록이 쉽게 생성되고 쉽게 사라지는 환경 속에서는 기록의 지속성과 가치에 대한 인식이 약해질 수 있죠. 따라서 청소년들에게는 기록 매체의 편리함과 함께, 기록을 오래 남기고 의미 있게 관리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음성을 담는 기록 매체 녹음기를 통해 한국 음악이 담긴 최초의 음반 ‘아리랑’을 감상한 박서현·전서진(왼쪽부터) 학생기자.
그러면서 "다만 기록 매체의 역사가 보여주듯, 새로운 매체가 등장한다고 해서 기존 매체가 즉시 사라지지는 않아요. 종이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비중이 줄어들 것이며, 그 과정에서 도서관은 종이와 디지털을 아우르는 모든 기록을 보존하는 ‘기억의 저장소’로서 역할을 이어갈 것이라고 봐요"라고 덧붙였죠. 이어 기록물을 소중히 보관하는 이유와 기록의 가치에 관해서도 설명했어요.

"기록은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흔적이자,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우리가 기록물을 소중히 보관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기록이 미래 세대에게 전달되어 새로운 지식과 통찰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죠. 기록은 보존될 때 존재하고, 읽힐 때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아무리 잘 보관된 기록이라도 접근할 수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국립중앙도서관이 단순한 보관을 넘어, 기록을 찾을 수 있게 만들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하는 이유에요"라고 강조했죠.
디지털 정보 처리의 방식으로 작은 크기 매체에 많은 양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컴퓨터의 발전은 기록의 양과 속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사진은 초기 컴퓨터 모습.
박 학예사 설명처럼 기록매체박물관에서 보여주는 기록의 역사는 결국 인류가 어떻게 기억을 남기고, 지식을 축적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는지에 대한 여정이에요. 디지털 시대를 맞은 현재,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지만, 동시에 그 기록을 잘 보존하고 의미 있게 전달하는 데 대한 중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록 매체는 더 많은 정보를 더 작은 공간에 저장하고, 더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해요.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변화하고 발전해도 기록의 본질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하죠. 이에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과 장소가 담긴 옛 사진을 전문적으로 복원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복원 전문 크리에이터 복원왕(김성진·장재득)을 만나 기록 매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동행취재=김리현(서울 대도초 6) 학생모델·박서현(인천 중산초 6)·전서진(서울 반원초 6) 학생기자

복원왕을 만나다

Q : 어떤 계기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환하는 작업을 하게 됐나요.

김성진(이하 김) 저희는 삼보컴퓨터 입사 동기였어요. 삼보컴퓨터가 없어진 뒤 각자 일을 하다가 2013년부터 함께 일을 해보자며 의기투합했는데, 그때 유튜브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했거든요. 저는 사진 찍는 일도 했고 포토샵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고 또 사진 복원하는 게 취미였어요. 그리고 재득이는 새로운 걸 찾고 검색하는 걸 좋아해서 이런 장점을 살릴 아이템을 고민했죠.

장재득(이하 장) 처음에는 옛 사진을 복원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었는데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누군가가 다 찢어진 사진을 주면서 이걸 컬러 사진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해서 그때부터 사진 복원을 시작했어요. 형이 손재주도 좋고 전 또 검색하는 걸 좋아하니까 저희 두 사람의 장점을 살릴 수 있겠다 싶었죠. 그때부터 역사 사료로 공개된 흑백사진을 복원하기 시작했어요.
영상 크리에이터 복원왕으로 활동하는 장재득(왼쪽)·김성진씨는 사진 매체 복원을 통해 많은 사람한테 위안을 주는 것 같다며 앞으로는 복원 사진을 시기별로 작업해 아카이빙하고 싶다고 전했다.


Q : 과거 자료를 찾을 때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요.

주로 사진 복원을 작업하다 보니 저작권 체크를 안 할 수 없겠더라고요. 처음엔 서울기록원의 '서울사진 아카이브'에서 공개한 1970~80년대 사진을 복원했죠. 공공기관 자료인 경우 저작권에서 좀 자유로운 편이에요. 특히 공공누리 1호로 분류된 콘텐트의 경우 상업적 이용 및 변형이 가능해서 공공누리 1호 자료만 복원하고 있죠. 과거 사진을 찾다 알게 된 부분인데, 외국 박물관이나 대학교, 공공기관의 경우 일정 기간만 지나면 2차 저작이 가능하도록 이용제한을 풀어놓은 곳이 상당하더라고요. 그래서 1900년대 초나 한국전쟁 전후의 사진 대부분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찾은 자료입니다.


Q : 과거 사진 복원 시 어떤 부분을 중점을 두는지 궁금해요.

저희는 과거 일상, 평범한 사람들에 주목해요. 사람들이 생활한 일상 풍경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사진 복원할 때 크게 확대해서 곳곳을 살펴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요. 1906년 대한제국 당시 독일 장교 헤르만 산더가 당시 거리 상점을 촬영한 사진이 있는데 확대해 보니 일하는 아빠 옆에서 자신과 놀아주지 않아 심통이 난 채로 서 있는 어린이가 보였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먼 과거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고 느껴져요.

MZ세대에게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다는 조선의 번화가를 활보하는 중년 신사 사진.

Q : 옛 사진 복원에 어렵거나 아쉬운 점은 뭔가요.

앞서 언급했듯이 저작권 문제가 어렵고 아쉬운 부분이죠. 저희가 여태 복원한 사진을 보면 서울이 많은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다른 지역보다 자료도 많지만, 저작권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워서입니다. 저희가 올린 사진 게시물 댓글에 자기들 지역 사진도 복원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요. 그래서 문의해보면 저작권 문제 때문에 쉽사리 사진 자료를 주지 않아요. 또 옛 사진 보존이 잘되지 않은 문제도 있고요. 한국전쟁 전 1930~40년대 경기도 연천이 정말 큰 도시라고 들어서 연천군에 사진을 요청한 적 있는데, 홍수 때문에 사진 자료 대부분이 없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더 다양한 일상을 컬러로 복원하고 싶지만, 사진이 없어서 또 저작권 이슈 때문에 제한적일 때가 아쉽죠.

흑백사진에 대한 설명이 따로 없으면 시대를 고증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재득이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 사이트까지 여러 방법으로 검색해서 최대한 당시를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예전에 대한제국 시절 흑백사진을 봤을 때는 마치 일본 순사가 우리나라 사람을 잡아가는 듯한 모습이었거든요.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제복에 있는 문양이 대한제국군인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렇듯 사진 관련 자료를 엄청 찾아야 팩트에 맞게 복원할 수 있어요. 복원만큼 자료 찾는 시간도 손이 많이 가죠.

1906~7년쯤 평양 모란봉과 대동강 주변 절경을 컬러 사진으로 복원했다.

Q : AI 기술은 기록 복원 작업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저희가 강연을 가거나 게시물 댓글에도 종종 어떤 AI 프로그램으로 작업하냐는 질문이 나와요. 저희도 인공지능 도움을 받으면 더 많이 작업할 수 있고 수익적인 면에도 좋겠죠(웃음). 예전에 1900년대 광화문 일대 사진을 복원하려고 사진을 던져주고 기와·문양 등에 어떤 색으로 덧칠하라고 주문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우리나라 기와가 아닌 붉은 색의 중국 기와 결과물을 내놓더라고요. 당시 사진이 없을뿐더러 인공지능이 이와 관련 학습을 못 했으니 도출한 결과도 틀릴 수밖에 없는 거겠죠. 이런 역사적인 사진 복원이야말로 오히려 사람 손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1966년 10월 29일 촬영한 광화문 사거리의 모습. 멀리 보이는 조선총독부 건물은 1996년 11월 13일 완전히 철거됐다.

Q : 옛 사진을 복원하면서 뿌듯했던 적도 있나요.

너무 많죠. 저희는 복원왕 계정 댓글을 다 읽고 대댓글도 달려고 노력해요. 댓글 보면 옛날 추억을 떠올리게 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 많은데 그중 기억 남는 분이 있어요. 할아버지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사진이 없는데 저희가 복원한 영상을 보다 할아버지 모습을 발견했다는 거예요. 그걸 본 엄마도 너무 좋아하셨다고 해서 참 뿌듯했죠.

복원왕은 사진 매체 복원을 통해 많은 사람한테 위안을 준다고 생각해요. 또 과거랑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고요. 사진 한 장 작업하는 데 20시간 넘게 매달릴 때도 있거든요. 사실 '복원왕' 계정으로는 수입이 저조하고 돈도 안 되는데도 계속하는 이유는 평범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고 간직하고 싶어서예요. 대단한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이 아니어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복원 사진을 시기별로 작업해서 구독자분들이 연도와 지역만 검색하면 사진이 나올 수 있도록 아카이빙하고 싶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후기
이번 취재로 돌에 새긴 그림에서부터 종이를 거쳐 플로피 디스크에서 USB까지, 기록 매체의 발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평소 쓰는 컴퓨터와 USB 등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그 과정을 보니 지금이 얼마나 대단한 시대인지 느낄 수 있었죠. 과거 종이에서 영상으로 영상에서 인공지능으로 발전했을 때 사람들은 정말로 이뤄질지 몰랐을 거예요. 그런데 상상이 현실이 됐죠. 앞으로는 또 어떤 변화를 맞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미래에는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기록하고 저장할지 호기심이 생기는 취재였습니다. 저 또한 이러한 기록 매체 사용을 당연시하지 않고 더 발전시킬 방법이 없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태블릿·PC 등 여러 기록 매체를 잘 쓰고 있지만, 하루빨리 새로운 기록 매체가 등장했으면 해요. 그럼 그 매체로 여러 기록을 남겨보고 싶습니다.

김리현(서울 대도초 6) 학생모델

처음 ‘기록 매체’라고 들었을 땐 제게 조금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취재를 통해 기록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게 됐죠. 신기한 옛날 컴퓨터 전시장에는 지금의 제가 알고 있는 가볍고 얇은 모니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애플 컴퓨터가 있었습니다. 마치 커다란 박스처럼 생긴 디자인이 예쁘고 신기했죠. 또 요즘은 스마트폰 하나로 노래를 듣지만, 예전에는 카세트테이프와 CD를 직접 기계에 넣어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도 인상 깊었어요. 엄마도 어린 시절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녹음 버튼을 눌러가며 음악을 녹음했었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놀라웠죠. 만약에 기록 매체가 없었다면,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의 역사는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니 기록이 왜 중요한지 깨닫게 됐습니다. 지금 제가 매일 쓰고 있는 일기도 어른이 됐을 때는 추억할 수 있는 기록 매체로 남겠죠. 그리고 취재 후 제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불편했을 것 같아 지금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박서현(인천 중산초 6) 학생기자

국립중앙도서관 안에 있는 기록매체박물관에 방문해 기록 매체의 변화와 역사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박물관에는 경주에서 보았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복제본, 수십 년 전 최초의 컴퓨터 등도 책과 동일한 기록물로 전시돼 있었어요. 더불어 '도서관' 하면 생각나는 책 형태 기록물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문자 기록의 역사를 함께 볼 수 있어서 더 뜻깊었고, 기록물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어요. 특히 지금과 달리 무척 큰 컴퓨터부터 플로피 디스크 등 지금은 볼 수 없는 다양한 기록 매체를 볼 수 있어 신기했습니다. 저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듯 제 일상을 꾸준히 기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서진(서울 반원초 6) 학생기자



이보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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