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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끝, 고향 갈 수 있다" 축배 든 체한 이란인들의 '떼창'

중앙일보

2026.03.01 22:43 2026.03.0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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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성동구 모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이란인 유학생 니우샤 샤리루(31·왼쪽)와 키이나(28). 오삼권 기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사망하자 한국에 체류하는 일부 이란인들이 “독재가 끝났다”며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단 이유 등으로 고국을 찾지 못하고 있던 이란인들은 다시 고향에 갈 수 있단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들은 지난 1일 서울의 한 술집에 모여 축하 파티를 열기도 했다.

이날 중앙일보가 만난 장게네 알만(49)은 “47년간 이어진 독재 체제가 끝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많은 이란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정부는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감옥에 보내고 함부로 숙청해왔다”며 “국민들이 힘없게 불행에 빠져있었는데, 앞으로 상황이 바뀔 수 있단 기대가 생겼다”고 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습이 이뤄진 뒤 연기가 치솟는 모습. AFP=연합뉴스
서울 동대문구에서 자동차 부품 판매 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27년 전 사업을 위해 한국에 왔다고 한다. 알만은 “50~60년 전 이란은 일본과 자동차 부품 산업에서 경쟁할 정도로 경제 수준이 높았지만, (독재 시작 이후) 모든 게 멈춰섰다”라며 “한국과 중국에서 첨단 자동차를 수백만 대씩 만들 때 우리는 50년 전과 똑같은 자동차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후퇴하는 나라의 모습을 보면서 이란 사람들이 분노하게 됐다. 앞으론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학생 니우샤 샤리루(31)는 4년째 고향 땅을 못 밟고 있다고 했다. 이란 이슬람아자드대 의대를 졸업한 뒤 2020년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로 유학 온 그는 2022년 국내 히잡 거부 시위에 참여한 이후 고향을 다시 찾지 못했다. ‘도덕 경찰’로 불리는 이란 지도순찰대(가쉬테에르셔드)에게 체포될까 두려워서다. 하메네이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도 샤리루는 이란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2022년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란 당국에 체포된 후 사망하자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시위가 그해 11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다. AP=연합뉴스
그는 “하메네이에 대한 공습 소식을 듣고 처음엔 정말 믿기지 않았다”며 “당시 영상이 한둘씩 공개되자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이 났다. 너무 행복하고 기뻐서 2시간 동안이나 울다가 웃었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기쁨을 즐기고 싶다”며 “이란 정부는 40일 동안 하메네이를 추모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온 국민이 슬퍼하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실제론 거의 모든 이란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에 남아있는 가족에게 걱정하는 마음을 전하는 유학생도 있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다는 유학생 키이나(28)는 “이란 안에서 시위가 벌어지거나, 공습이 이뤄지면 곧바로 인터넷이 바로 두절돼 가족과 직접 연락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가리지 않고 인터넷이 터지는 지역의 사람을 찾아내 가족이 안전한지 등을 몇 단계를 거쳐 간신히 전해 듣는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은 항상 괜찮다고 하시지만,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늘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습으로 이란 테헤란의 한 교도소 건물이 파괴된 모습. EPA=연합뉴스
샴스나미니 허니예(34)는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당시 부모님을 고국에 두고 온 것이 지금까지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고 했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그는 지난해 3월 이란에서 아이를 낳은 뒤 한국으로 돌아오려던 차에 공습이 시작됐다고 했다. 허니예는 “남편이 이란에 도착하기 하루 전인 6월 13일 새벽에 아기용품을 찾아보다가 갑자기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렸다”며 “처음엔 번개인 줄 알았고, 그다음엔 가스 폭발인지 알았다. 3번째 반복되고 나서야 공습이 시작됐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데리러 오던 남편은 튀르키예에서 발이 묶인 상태였다”며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한국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육로로 국경을 넘었는데, 부모님은 남겠다고 하셔서 아이랑 둘이 빠져나왔다. 그때 부모님을 두고 온 게 지금까지 트라우마”라고 말했다. 남편 허정호(46)씨는 “작년에 태어난 아기가 지금 딱 12개월이 됐다”며 “하루빨리 아내와 아이 손을 잡고 이란에 계시는 장인어른, 장모님을 찾아뵐 수 있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1일 서울 성동구 모처에서 한국 체류 이란인이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 사망을 축하하기 위해 행사를 연 모습. 오삼권 기자
한편, 지난 1일 오후 9시 서울 성동구의 한 술집에선 한국 체류 이란인 약 80명이 모여 하메네이의 사망을 축하하는 기념 파티가 열렸다. 행사에 참여한 이란인들은 빌리지 피플의 ‘YMCA’ 노래가 나오자 ‘떼창’을 하는 등 자정까지 파티를 즐겼다. 한 이란인 참석자는 “독재자의 죽음을 기뻐하기 위해 왔다”며 “그동안 슬픈 일이 너무 많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다 잊고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오삼권([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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