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끓는 함성이 막사 벽에 부딪혀 메아리친다. 1987년, 수도방위사령부 제57사단 특공 중대. 충정 훈련에 절은 군복엔 소금꽃이 핀다. 밀착대형에 박자 맞춰 군화로 땅을 차면 천둥소리가 났고, 공포는 그렇게, 위력의 옷을 갈아입었다. 필자는 휴학생으로 입대해 시민들에게 총검을 겨누는 폭동 진압훈련에 동원됐다. 6월항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사단 작전처의 전화를 받았다. “실제 상황이다! 광화문에서 폭발물로 의심되는 선물 상자가 발견됐다.” 혹시, 계엄? 육공트럭에 올라탄 중대원들의 머릿속이 번잡해질 즈음, 철수 명령이 내려왔다. 이 부대는 24년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첫 휴가에 찾은 캠퍼스는 최루탄 냄새로 눈이 맵다. “홍규야, 싸인 30도는?” 친구가 묻는데 머릿속이 하얗다. “코사인 45도는?” 웃어넘겼지만, 아!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흐른다. 복학한 뒤, 그는 조교로 강의실에 들어왔다. 시간은 그렇게, 멈췄다. 이스라엘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매주 한두 번 연구실을 비우던 직장 동료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 나라 이공계 엘리트는 ‘아투다’와 ‘탈피오트’라는 제도로 학업과 병역을 겸한단다. 야전이 아닌, 대학과 군 연구소, 방산업체에서 복무하는 비전투 요원이다. 덕분에 천문학에서 배운 광학 기술은 정찰 위성의 눈으로, 궤도 역학은 아이언돔 요격 알고리즘으로 변신했다. 그래서 군은 경력이 끊기는 곳이 아닌, 과학이 실전과 만나는 창업 공간이다. 최근 정부는 이공계 인재를 위한 병역특례 대책을 내놨다. 그들의 학위와 병역을 이어준다니, 내 일처럼 기쁘다. 1988년, 소금꽃이 하얗게 핀 저녁. 유재하의 ‘지난날’이 연병장을 나른하게 감쌌다. 어느새 그날은 가고 머리엔 하이얀 눈꽃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