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때, 우울할 때, 슬플 때, 가끔 이 세 가지 감정이 동시에 찾아올 때 나는 메밀면과 육수를 찾는다. 특히 은은한 육향이 담긴 슴슴한 육수를 들이키면 내 감정도 슴슴해진다. 마음의 거친 물결이 다시 잔잔한 표면이 되는 것 같다. 내 인생 마지막 순간에도 평양냉면의 슴슴한 국물을 주욱 들이켰으면 좋겠다. 슴슴했던 인생을 사느라 고생한 나의 영혼에 슴슴한 위로를 해주고 싶다. -최강록의 『요리를 한다는 것』 중에서.
내 인생 마지막 순간의 풍경과 날씨, 음악 등을 상상해본 적은 있지만, 마지막 음식까지 떠올려 본 적은 없다. 슴슴한 인생에 대한 슴슴한 위로로 슴슴한 평양냉면이라니, 역시 최강록 셰프다운 선택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지 않는 의외의 행보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가 최강록이다. 2024년 ‘흑백요리사’ 시즌1 출연으로 한껏 유명해졌는데, 하던 식당을 접었다. 올해 시즌2 우승 후에도 식당을 열지 않았다(물론 방송 출연이나 식품업체 콜라보 등은 하고 있다). 나이가 더 들면 국수 식당을 낼 생각이라니, 거기는 꼭 가볼 참이다.
어눌한 듯 심지 있는 말의 달인답게 맛 표현이 풍부하다. 가령 “해물 육수가 개운하다면 고기 육수는 꾹 누르는 맛이 있다. 입속 중력이 지구의 중력보다 세지는 기분이다. 나는 이걸 국물이 묵직하고 빈틈이 없다고 표현한다.” ‘맵찔이’로선 매운맛 품평에 특히 공감했다. “너무 매운 것, 맛이 아닌 자극에 치우친 것은 아예 시도를 안 한다. 20대 때 호기심에 친구들과 불닭을 먹었는데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이 끝날 수 있을까, 너무 괴로워서 정말 몸을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필요 이상의 것들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으면 나는 화가 난다. 감정의 밸런스를 깨뜨리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 “(소주는) 모든 한식을 아우르는 블랙홀 같은 술. 각자 다른 역에서 탔지만 내리는 곳은 모두 같은, 술의 종착점.”
그에게 “먹는다는 것은 입안에 맛있는 음식을 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에 만족스러운 시간을 하나 더 추가하는 일”이다. 오늘 만족스런 식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