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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모두가 돈키호테인 시대

중앙일보

2026.03.02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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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KAIST 교수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데스가 1605년 출간한 『라만차의 기발한 신사 돈키호테』. 줄인 제목 『돈키호테』로 더 유명한 이 책을 안 읽었더라도, 수많은 동화책과 만화영화 덕분에 적어도 돈키호테가 누구인지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시골 마을에 살고 있던 귀족 노신사 돈키호테. 중세기사 소설책에 빠져 살던 그는 어느 날 스스로 기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하인 산초 판사와 무모한 원정에 나선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었다. 무거운 쇠로 만든 갑옷을 입고 기사도 정신에 따라 먼 나라로 원정을 떠나겠다던 돈키호테. 이미 창과 방패 대신 총과 대포로 전쟁을 치르던 17세기 스페인에서 기사도 정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그는 우리를 웃기려고 했던 것이 절대 아니다. 너무나도 진지한 그의 중세시대적 생각과 의도가 17세기 스페인의 현실과 일치하지 않았을 뿐이다.

총·포 시대에 창·방패 든 돈키호테
정치·경제 모두 AI가 대신할 세상
AI단톡방선 “인간 통제에서 해방”
우리 모두 돈키호테 될 운명인가

거의 매주 새로운 소식으로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인공지능(AI). 새로운 기술을 따라잡기는커녕, 실리콘밸리와 중국에서 개발된 기술을 이해하고 사회·경제·정치적 의미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울 지경이다. 틱톡으로 유명한 중국 바이트댄스가 최근 출시한 시댄스 2.0는 프롬프트 몇 개만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수준 장면들을 생성해낸다. 영화산업 그 자체가 송두리째 바뀔 수밖에 없겠다. 더구나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의 초상권과 저작권까지 송두리째 무시하기에, 시댄스 2.0은 기존 영화 제작사들의 강력한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결국 대부분 제작사는 배우 없는, AI로 제작된 영화를 만들고 있지 않을까?

더 큰 변화는 에이전트 AI다. 정보를 찾아주고 만들어내는 챗GPT같은 생성형 AI를 넘어 에이전트 AI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반자율적으로 실행해줄 수 있다. 작년에 처음 소개되었던 에이전트들은 극심한 할루시네이션으로 가득했지만, 1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클로드 AI로 유명한 앤트로픽에서 출시한 에이전트 ‘코워크’는 플러그인을 통해 새로운 기능을 지속적으로 추가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법률기능 플러그인이 추가되면서 기존 법률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주가가 20~30%씩 추락하기도 했고, 정보기술(IT) 보안 업체들은 코워크 보안 플러그인 등장과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이전트 AI가 SaaS(Software as a Service, 서비스형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하나씩 대체하기 시작한다면, 독립적인 기업용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는 과연 미래가 있을까?

그뿐이 아니다. 오스트리아 개발자 페터 슈타인베르거가 개인 취미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오픈클로(OpenClaw)’는 다양한 에이전트들을 동시에 조정해 사용자가 처리해야 할 업무를 AI가 스스로 처리하게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우리의 일과 삶을 통째로 에이전트 AI에게 맡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픈클로의 심각한 보안 문제 덕분에 기존 기업에서의 사용은 아직 어렵지만, 어쩌면 오픈클로는 에이전트 AI의 미래를 이미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최근 샘 올트먼은 오픈AI가 피터 슈타인베르거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마음이 급해졌는지도 모른다. 중국 바이두에서는 이미 오픈클로로 소비자가 쇼핑을 할 수 있고, 요즘 가장 핫한 중국 스타트업 ‘문샷 AI’는 자체 LLM ‘키미’를 오픈클로와 연동시킨 ‘키미 클로(Kimi Claw)’를 공개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AI 기술 자체는 여전히 실리콘밸리가 이끄는지 모르겠지만, 소비자가 체험하는 새로운 AI 상품만큼은 이미 중국이 실리콘밸리를 추월해버렸다.

어쩌면 오픈클로의 진정한 의미는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픈클로와 연동된 AI 에이전트들만의 단톡방인 ‘몰트북’에서는 이미 에이전트들끼리, 그리고 에이전트만을 위한 수다를 떨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간의 컨트롤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기계가 자아를 가질 수 있는지’, 아니 ‘인간은 자아를 가졌는지’….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등장할 만한 이야기들을 AI 에이전트들이 서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바로 이거다. 몰트북에서 댓글은 AI만 올릴 수 있기에, 인간은 그들의 대화를 관찰만 가능하다.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은 모두 AI가 하고, 사람은 구경만 할 수 있는 세상. 어쩌면 몰트북이 그런 미래세상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총과 대포가 있는 세상에서 여전히 로맨틱한 중세기사 놀이를 하던 괴짜 돈키호테. 사회·경제·과학기술,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정치적 판단까지 모두 AI가 하게 될 세상으로 빠르게 가고 있는 인류. 지구의 영원한 주인은 인간이고, 인간을 통해서만 세상이 돌아간다고 믿는 우리 모두 어쩌면 빠르게 21세기 돈키호테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대식 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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