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버려진 추방자(2) 한국·미국서 모두 외면받는 삶 서류상 ‘사망자’, 산골 셸터 연명 정부 통계 밖 300명 유령 신세 홀로 지내다 결국 극단 선택도
한국에서 ‘사망자’로 기록된 채병록 씨가 셸터 내 자신의 침상 위에서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이 나고 자란 땅으로 추방된 이들. 그러나 모국은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친인척도 없고, 몸뚱아리 하나 누일 곳 없는 한국에서 추방자들이 마지막으로 다다르는 곳은 경기도 여주 지역 산골 중턱의 한 셸터다. 세계십자가선교회가 추방자 및 중독자들을 위해 운영하는 보금자리다. 자진 출국이든 추방이든, 미국과 한국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한인 10여명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9월의 어느 날, 셸터에서 만난 채병록(70) 씨는 뉴욕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죽은 사람으로 분류돼 있었다. 채씨는 현재 호적 회복 소송을 진행 중이다. 얼마 전 뉴욕에서 추방돼 한국으로 왔지만, 한국에는 채씨에 대한 기록이 아무것도 없다.
그가 미국으로 건너간 건 1999년의 일이다. 당시 한국의 외환위기로 생계 유지가 어려워졌다. 채씨가 선택한 건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뿐이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물론 정식 비자를 받지는 못했다. 관광 명목으로 무작정 미국 땅을 밟은 건 생존을 위한 절실하면서도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합법 신분이 아닌 상태로 미국에서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았다. 채씨는 목수 등 일용직 노동을 전전하며 근근이 살아갔다.
그는 당시 한국에 남아 있던 가족들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현재 채씨가 한국에서 ‘사망자’로 등록돼 있는 것은 그가 미국으로 떠난 뒤 가족들이 오랜 기간 연락이 닿지 않자 사망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채씨는 “미국에선 소셜 시큐리티 번호가 없으니 은행 계좌를 만들 수가 없어서 일당을 현금으로 받아 생활했었다”며 “체류 신분만 없었을 뿐 죄 안 짓고 착실하게 살았고, 수입이 들어오면 ITIN(납세자 고유 번호)을 받아 세금도 냈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착실하게 살아도 그는 불법체류 신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압박이 심해지니까 뭔가 조여오는 느낌이 나더라”며 “그런 사회에서 착하게 사는 게 부질없다고 느꼈고 결국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채씨는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체포돼 추방을 당하느니 차라리 마음 편하게 자진 출국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사망자로 기록돼 있는 탓에 제대로 된 한국 여권을 받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뉴욕 총영사관의 도움을 받아 임시 여권을 받고, 그제야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세계십자가선교회를 운영하는 안일권 목사.
이 셸터는 안일권(80) 목사가 운영하고 있다. 1989년부터 미국에서 온 갈 곳 없는 추방자들을 돌보고 있다. 그는 장님이다. 앞은 볼 수 없지만 추방자들이 겪는 절망과 상처는 들여다볼 수 있다.
안 목사는 “갈 곳 없는 추방자들은 자신이 살아가던 미국에서, 또 태어난 한국에서 모두 버림받은 사람들”이라며 “셸터를 운영하고 나서 지금까지 약 500명의 추방자가 이곳을 거쳐 갔는데, 특히 요즘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런 사람이 유독 더 많아졌다”고 전했다.
한국으로 추방된 뒤 현재 목회자로 활동하며 같은 처지의 추방자들을 돕고 있는 이본 목사.
이본(73) 목사는 살인 전과가 있는 추방자다. 이 셸터를 통해 도움을 받아 지금은 목사로서 자신과 같이 미국에서 추방된 이들을 돕고 있다.
‘이본’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한국어 발음으로 ‘본’은 영어로 ‘Born’,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현재 인천 하늘문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세계십자가선교회를 통해 미국에서 온 추방자들의 한국 정착을 돕고 있다.
이 목사는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를 들려줬다. 1985년 5월 3일이었다. 그는 자신과 결혼했던 아내의 머리에 총을 쐈다. 결혼 후 영주권을 받자마자 곧바로 떠나버린 아내에 대한 분노였다. 이 목사는 당시 사기 결혼 피해를 당했다고 여기고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했었다. 그러자 아내가 갱단원을 고용해 소송을 취하하라며 협박과 공갈을 일삼자 홧김에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 생활을 시작했다. 21년 9개월을 교도소에서 지내던 중 미주 한인교계의 탄원으로 가석방 결정을 받아 석방됐고, 곧바로 한국으로 추방됐다. 2007년 2월의 일이었다.
이 목사는 “미국법이라는 게 참 모질고 무섭다. 다시 기회를 주는 건 없다”며 “그렇다고 추방자들이 한국으로 쫓겨나면 한국 정부 역시 그들을 도울 제도적 시스템 같은 게 전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2020~2024년 사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강제 추방된 한국인은 총 70명이다. 반면 ICE가 같은 기간 집계한 한국인 추방자는 총 367명이다. 약 300명의 추방자가 통계 밖에 존재하며 한국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안 목사, 그리고 이 목사는 그동안 미국에서 쫓겨난 추방자들을 수없이 만나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모두가 한국에 잘 정착해서 살면 좋겠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두 목사는 이 사역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안 목사는 “양부모가 신분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아 결국 버림받고 필라델피아에서 한국으로 추방됐던 한인 입양아가 있었다”며 “아기 때 입양됐으니 한국에 아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느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모국은 그렇게 쫓겨난 이들을 받아주지도, 알아봐주지도 않는다. 추방보다 더 무서운 건 철저히 외면받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