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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본 김에 떡라면 내놨다, 쌀회장님 ‘970억 전설’

중앙일보

2026.03.03 07:02 2026.03.0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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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Leader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이 충남 청양에 있는 공장에서 갓 생산된 가래떡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1980년대 초 서울 연희동에 있는 한 분식점. 자기 키만 한 자전거에서 내린 손님이 라면 한 그릇을 주문했다. 쓱 눈치를 보더니 가래떡 한 봉지를 내밀면서 “미안한데 (라면과) 같이 넣어서 끓여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배가 몹시 고팠어요. 라면 하나로는 양이 부족해 떡을 더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주린 배를 채우고 나서 고마운 마음에 주인한테 떡 한 봉지를 드리고 나왔어요. 그랬더니 이튿날 연락이 왔어요. ‘다른 손님한테 같은 음식을 내놨는데 반응이 좋다. 떡을 더 구할 수 있냐’는 겁니다.”

우연히 탄생한 ‘국민 분식’ 떡라면
그날 연희동 분식점 메뉴판에는 ‘떡라면’이 생겼고, 금세 전국으로 퍼졌다. 지금은 ‘국민 분식’이 된 떡라면을 발명(?)한 인물이 이능구(83) 칠갑농산 회장이다. 그는 1972년 떡국 떡을 취급하면서 쌀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쌀국수를 시작으로 쌀떡볶이·쌀수제비·즉석쌀면 등 쌀가공식품의 A부터 Z가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지금도 쌀가공 외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970억원, 올해는 1000억원 달성이 무난할 전망이다. 충남 청양과 경기도 파주(2개)에 세 개의 공장을 운영한다.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대형마트에 가면 ‘칠갑농산 단독 매대’가 마련돼 있다. 반짝인기를 끄는 히트 상품보다 꾸준히 손에 잡히는 스테디셀러가 더 많다.

정근영 디자이너
그 시작은 버거웠다. 이 회장은 1943년 청양 칠갑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손이 귀한 집안의 4대 독자. 첫 아이가 뇌척수막염을 앓았다. 대처(大處)에 가서 치료비를 구해야 했다. 손에 쥔 돈은 8000원, 지금 시세로 쌀 한 가마니 값이었다. 서울 양평동 뚝방에 월셋집을 얻고, 떡 장사를 시작했다. 영하 20도,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날에도 쉼 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우연히 연희동 분식점에서 ‘중박’이 터졌다. 강남 아파트 상가에도 진출했다. 그즈음 거래처 대표가 동업을 제안했다. 주문이 늘면서 동업자가 새 공장 건축을 맡았는데 투자 금액이 예상보다 컸고, 설비는 부실했다. “갈라 서자”고 했지만, 이때부터 고통의 연속이었다. 별안간 뇌경색이 왔다. 의사는 “이대로는 3년 밖에 못 산다”고 경고했다. 우선 살아야 했다. 지팡이 하나 짚고 날마다 경기도 양주 송추계곡을 걸었다. 10m 움직이는 데 30분이 걸렸다. 한 달쯤 지나서야 도봉산 중턱까지 오를 수 있었다. 온전히 회복하는 데 7년이 걸렸지만, 사업은 엉망이 됐다.

재기 발판이 된 건 기계 기술이었다. 이 회장은 “떡을 쪄 내는 스팀압력 증숙기부터 살균 건조기까지 칠갑농산이 보유한 가공 기계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고 자랑했다. 대표적인 게 압력밥솥의 작동 원리를 응용한 스팀압력 증숙기다. 방앗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증숙기는 대량 생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는 증기를 대형 솥 안에 가두고, 내부에 구동 날개를 달아 원료가 잘 섞이는 증숙기를 고안했다.

수제비 기계도 설계했다. 기존에도 꽈배기 모양의 수제비는 있었다. 대부분 면을 익힌 다음 기계로 꽈배기 모양을 낸 것. 그는 방식을 달리 했다. 금형의 두께를 한쪽은 두껍게, 다른 한쪽은 얇게 틀을 짰다.

갓 뽑아낸 면을 햇볕에 말리는 방식도 그의 아이디어다. 쌀과 밀을 열풍으로 말리면 가공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수분이 급하게 빠져나가면서 기포가 생긴다. 이러면 면발 특유의 탱탱함이 줄어들고, 식감도 텁텁해진다. “면을 건조대에 널어 햇볕으로 말리던 재래 방식을 현대화했어요. 덕분에 훨씬 쫄깃한 맛이 납니다. 햇볕으로 면을 건조하는 시설은 국내 유일합니다.”

그의 제품 철학은 단순하다.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 “쌀국수면 쌀이 주원료고, 김치만두면 김치가 제대로 들어가야 한다는 게 원칙입니다. 포장지에 ‘쌀’을 주원료라고 표기했는데 실제 함유량이 10%라면 거짓입니다. 작은 눈속임을 하다간 큰 신용을 잃어요.”

“작은 눈속임 하다간 큰 신용 잃어”
2000년대 초 ‘만두 파동’ 때 일화다. 단무지와 김치 양념으로 속을 채운 만두가 논란이 됐다. 하지만 칠갑농산 제품은 전혀 시비가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만두소에 들어가는 김치를 만들기 위해 한해 2만 포기의 배추를 직접 재배한다.

현재 칠갑농산 경영에는 이 회장의 세 자녀가 참여하고 있다. 장녀 이영미 사장은 파주공장을 책임지고 있다. 둘째인 이영주 대표는 해외 사업을 챙긴다. 장남인 이병선 상무는 변호사로 일하면서도, 청양공장 관리를 맡고 있다. 이영주 대표는 “지난해 수출 실적이 82억원이었다”며 “차근차근 글로벌 기업에 도전하는 청신호”라고 말했다.

◆J-Leader=‘어떻게 리더가 되나’ ‘리더의 고민은 무엇일까’…. 직장인에게 습관처럼 따라붙는 질문입니다. 10년 이상 한우물을 파고, 자기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고수에게서 펄떡거리는 답을 찾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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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재.임선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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