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보행 신호가 짧다고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몸이 불편한 상태로 걸어본 사람이라면 보행 신호의 속도라는 게 ‘매우 건강하고 젊은 사람’에게 맞춰져 있음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 속도가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모두 바쁘니 다 같이 빨리 움직이자”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 속도가 암묵적으로 전하는 ‘배제’의 메시지도 강력합니다. “나이 들거나 몸이 편치 않은 사람들까지 다 배려할 순 없다”는 것입니다. 이 속도는 노약자에게 “머뭇거릴 시간은 없으니 서두르라”고 명령하고, 심하게 표현한다면 “남들 거추장스럽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지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신호 설계가 좀 더 인간적일 수 있다면, 노약자가 이용할 경우 ‘신호 연장’ 선택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디자인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집니다. 디자인은 단순히 형태의 문제가 아닙니다. 차도와 보행 도로, 광장과 공원, 계단과 경사로의 디자인은 도시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까지 드러냅니다. 벤치도 그중 하나입니다. 최근 한 네티즌이 SNS에 “장시간 걸을 수 없는 노인을 위해 길에 벤치가 촘촘하게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썼습니다. 그는 “벤치가 더 많아지면 노인들이 집 밖으로 더 편히 나올 수 있고, 앉아 담소도 나눌 수 있다”며 “(더 많은) 벤치야말로 노인들에게 필요한 복지”라고 말했습니다.
유현준 홍익대 도시건축대학 교수는 2020년부터 도심 내 공공 벤치 확충을 통해 사람들이 공짜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습니다. 그는 “벤치야말로 카페 등 소비 공간에 들어가지 않아도 사회·경제적으로 이질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짜로 머물고 쉴 수 있는 공간”이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거리 내 벤치 수에서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거리의 벤치는 ‘앉는 곳’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그곳은 우리에게 ‘느린 속도’를 허용하고 사회 참여를 돕는 포용의 공간입니다. 밖에 앉아 주변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우리가 도시를 경험하는 방식을 더 풍요롭게 합니다. 그곳에선 서로 말을 걸지 않아도 빈부격차, 세대와 문화의 격차를 넘어 하나의 보이지 않는 공동체로 연결됩니다. 노인이나 보행 약자에게는 필수적인 휴식처이며, 청소년이나 청년들에겐 경제적 부담 없이 머물 수 있는 공공재입니다. 더 관대하고, 더 인간적인 도시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공원과 벤치가 ‘모두를 위한 복지’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