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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의 시선] 한 문학평론가의 정치 유튜버 활동

중앙일보

2026.03.03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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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 논설위원
시쳇말로 ‘정알못(정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최근 정치권의 화두 비슷한 ‘뉴이재명’이라는 표현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의 책을 더러 읽고 인터뷰도 한 적이 있는 중견 문학평론가 함돈균(53)씨가 뉴이재명 현상과 관련 있어서다. 대통령 이름 앞에 ‘뉴(new)’라는 영어 관형어를 붙인 뉴이재명은 번지르르한 정치 선전이 아니라 알맹이가 그 안에 들어 있는 실사(實詞)가 되는 모양새다. 중앙일보에도 보도된 대로 지난달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 시도가 무산된 데 뉴이재명 세력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 하다(2월 19일자 5면 ‘“새 주류” vs “뉴수박”…여당 지지층, 뉴이재명 놓고 내전’).

중견 평론가 함돈균씨 깜짝 변신
과한 발언 있지만 합리적 의견도
극단의 시대에 말 아끼는 지혜를

뉴이재명은 원래 한겨레 신문이 제안한 조어(造語)다. 동일한 유권자층을 대상으로 시차를 두고 실시한 패널조사 결과 1차 조사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재명 정부 국정 운영 지지자들이 지난해 9월 2차 조사에서 새롭게 발견됐는데 이들 가운데 정치적으로는 중도·보수, 인구적으로는 30대 남성 비중이 높았다는 게 핵심이다. 이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혹은 취임 이후 국정 운영에 공감해 새롭게 지지자가 됐다고 해서 뉴이재명이다. 실용을 중시하는 뉴이재명들이 다분히 정치공학적으로 보이는 민주·조국 양당의 합당 기도에 반대한 결과 무산됐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로서 함씨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프랑스 현대철학, 그리스 고전에 두루 밝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2000년대 중반 등장한 미래파 등의 난해시를 요령 있게 읽어냈다. 그랬던 함씨가 지난 1월 하순 민주당의 합당 기습 제안을 계기로 백가쟁명, 고수들이 난무하는 정치평론 세계에, 그의 표현대로라면 ‘참전’했다. 물론 합당론자들을 비판하면서다. 정청래·유시민·김어준이 주 타깃이다. 2023년 1월 개설한 유튜브 채널 ‘함돈균의 뉴스쿨’이 그의 진지인데, 함돈균은 거침이 없다. ‘겸손이 힘든 놈들’ ‘문학평론가가 분석한 유시민의 해괴한 화법과 욕망’…. 에피소드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상대를 비판할 때 비속어도 서슴지 않는다. 다분히 유튜버스럽다. 최근 에피소드에서는 ‘자라면서 욕하는 걸 본 적이 없는 아들이 갑자기 욕을 해대니까 부모님이 걱정하시더라’는 집안 사정까지 공개했다.

시·소설을 안 읽는 세상인데, 누가 문학평론을 읽겠는가. 정제된 평론의 언어는 기껏 수백 명에게 가 닿을 뿐이다. 문단에서조차 ‘내부 회람용’이라는 자조가 나온다. 정치평론 혹은 정치 유튜브는 다르다. 수만 명이 읽고 수백, 수천 명이 찬성 혹은 응원글을 단다. 함씨 채널 구독자는 지난 1월 22일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합당 제안 직후 3만 명이 늘었다(현재 구독자 5만9800명). 공교롭게도 김어준의 유튜브(‘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구독자는 같은 시기 3만 명이 줄었다. 친문 성향 커뮤니티 클리앙에는 일종의 개종자(改宗者)도 보인다. 합당 무산 사태를 겪으며 김어준에 실망해 그의 유튜브를 구독 취소했다면서 함돈균의 유튜브 발언 내용을 요약해 놓은 글이 올라왔다.

덕분에 함돈균 몸값은 높아졌지만(타 유튜브 채널에 자주 초대된다) 뉴이재명의 한 특징으로 얘기되는 중도·보수적 시각에서는 거북스러운 주장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가령 지난달 19일 JTBC 유튜브 ‘장르만 여의도’에 단독 출연해 이례적으로 한 시간 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가운데, 지금 한국사회에는 윤석열의 쿠데타, 조기 대선을 무산시키려고 했던 조희대 대법원장 중심의 사법 쿠데타에 이어 정치적 뿌리가 다른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세 번째 쿠데타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개연성과 황당함이 공존하는 음모론처럼 느껴진다.

당연히 전향적인 주장도 있다. 검찰이 문제 많은 조직이기는 하지만 악마화해서는 곤란하며,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남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폐지 수준의 개혁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고쳐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함돈균 안의 모순 혹은 함씨보다 나을 것도 없는 우리 모두의 자가당착에 대한 해법이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함씨는 논쟁적 이슈에 대해 선명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이재명 대통령의 어떤 모습을,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키츠가 얘기한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Negative Capability)’에 빗댄다. 소극적 수용력, 격하고 급한 말을 참는 데서 사유의 힘이 빛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극단의 시대에 이도 저도 어려운 난경(難境)을 헤쳐 나가는 길은 말을 아끼는 침묵일지도 모르겠다.





신준봉([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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