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안혜리의 시시각각] 앤트로픽 계약 해지의 나비효과

중앙일보

2026.03.03 07:18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이란 공습 여파로 연휴를 마지고 지난 3일 개장한 코스피는 7% 이상 빠진 5791.91에 장을 마감했다.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표시된 코스피 지수. 강정현 기자
낙관론 믿고 뒤늦게 영끌해 상승장에 베팅한 주식이 어제(3일) 7% 넘게 속절없이 주저앉았다. 두바이(중동 허브)를 경유해 유럽 가려던 여행 계획은 두바이공항 운항 중단으로 일그러졌다. 이게 전부 내 삶과 무관한 줄 알았던 저 먼 나라 이란 지도자 하메네이 제거 작전(미군의 '장대한 분노') 후폭풍 탓에 평범한 한국인이 지금 겪는 일들이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시간이 흐르면 금융시장은 일정 수준에서 안정되고, 막혔던 두바이·도하 등 중동 허브도 다시 열릴 거다. 다만 시간 보낸다고 거저 해결되지 않을 더 어려운 걱정거리가 있는데, 그게 바로 이란 공습 전후로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 간의 갈등 국면에서 새삼 불거진 AI 관련 안보 종속 우려다. 한국과 무관한 미국 정부와 미국 기업 간 충돌이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 이번 '장대한 분노' 작전이 우리 기업과 국민 개개인 삶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 것만큼 결국 모두의 삶에 얽혀 있기에 하는 말이다.

주가 급락에다 해외여행길 막혀
먼 이란 공습, 내 삶과 밀접 연결
정부보다 센 AI 기업 준비돼 있나
지난달 27일 트럼프 대통령은 오픈 AI 출신 다리오 아모데이가 만든 자국 AI 기업 앤트로픽을 화웨이 같은 중국·러시아 적성국 기업에나 적용하던 '국가안보에 대한 공급망 리스크' 기업으로 지정하고, 모든 연방 기관에 즉각 사용 중단을 지시했다. 지난해 7월 앤트로픽이 국방부와 맺은 최대 2억 달러 규모 계약도 일방적으로 해지해버렸다. 지난 1월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 때 미 특수부대가 앤트로픽의 클로드를 활용해 표적 식별과 전투 시나리오 시뮬레이션 측면에서 톡톡히 재미를 봐놓고는, 앤트로픽이 "자국민 감시와 완전 자율무기는 양심을 넘어선다"고 원칙을 고수하자 이런 극약처방을 내린 거다.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왼쪽)과 앤트로픽 다리오 아모데이 CEO. [중앙포토]
자국 기업에 대한 이런 극단적 제재도 유례없는데, 불과 몇 시간 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의 금지 명령 와중에 미 중부사령부(CENTCOM)가 클로드를 활용해 '장대한 분노' 군사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7월 앤트로픽뿐만 아니라 오픈 AI·구글·xAI와도 비슷한 계약을 체결했지만,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핵심 분석 도구로 써온 팔란티어 플랫폼 위에서 작동하는 기밀 군사 네트워크는 클로드가 유일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앤트로픽이 정부 블랙리스트에 오르자마자 이 공백을 틈타 경쟁사 오픈 AI가 미 국방부와 새 계약을 체결해도 소용없었다. 트럼프 정부로선 오픈 AI가 실전에 투입될 때까지 수개월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쉽게 말해, 트럼프가 아무리 엄포 놓고 협박해도 지금 현재 미국의 최첨단 군사작전은 클로드 없이 불가능하다는 불편한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냈다는 얘기다. 정부와 민간기업 간 첨단기술 주도권 다툼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민간 AI 기업의 원칙이 정부 정책보다 현실에서 더 강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전 세계 국가 절반에 무기를 파는 막강한 군사력의 미국조차 이럴진대 한국을 비롯한 나머지 국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당장 미국에선 '민간기업의 상품 약관(원칙)이 군사 주권을 우선할 수 있는가'라는 논란이 터져 나왔다.

정반대의 시사점도 있다. 한국은 이미 여러 미 방산기업과 깊게 협업하고 있는 세계 10위권 무기 수출국이지만, 그걸 어디에 어떻게 쓸지 판단하는 머리는 없어 미국 민간 AI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자체로도 우려스러운데, 이번 앤트로픽의 공급망 배제처럼 한국이 의존하는 외국 AI 기업이 자국 정부와의 정책 충돌로 하루아침에 공급망에서 배제돼버리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외국 AI 의존이 안보 리스크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원칙을 위해 당장의 큰 손실을 감수한 앤트로픽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르겠지만, 우린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소버린 AI 없이 안보를 지킬 수 있나. 정부의 무차별적 AI 폭주도 문제지만, 그걸 구축한 민간기업이 정부를 압도할 때 어떤 선택이 있나.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