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면 절실하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스코필드(F.W.Schofield, 1889~1970) 박사다. 그의 한국 이름 석호필(石虎弼)은 돌과 같은 의지로, 강자에게는 호랑이처럼 무섭지만, 약자는 도와주는 사람을 뜻한다. 이름 하나에 그의 평생이 담겨 있다.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에 더해 34번째 대표로 불리는 스코필드 박사는 영국 태생이다. 그는 캐나다로 이주하여 토론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27세 때인 1916년, 연세대 전신인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초청으로 조선에 왔다. 낯선 땅이었지만 금세 뿌리를 내렸다. 그는 세균학 강의와 연구를 병행했다. 동시에 이상재 선생 등 식민지 조선의 민족지도자들과 친분을 쌓았다.
3·1 운동 실상 세계에 알린 인물
지난해까지 있던 기념관 폐쇄
3·1 운동 기념관 제대로 세워
비폭력 독립운동의 뜻 되새겨야
1919년 2월 28일 이갑성 선생이 찾아와 다음 날 독립을 요구하는 만세 운동을 준비하고 있으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는 이미 1월부터 이 선생에게 세계 정세와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를 소개하고 있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3월 1일 탑골공원 앞에 모인 수많은 조선 사람들과 대한독립만세의 물결을 렌즈에 담았다. 3·1운동은 독립을 향한 우리 민족의 열의와 기개를 보여준 평화적인 비폭력 독립운동이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참가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검거하였다.
스코필드 박사는 영자신문 ‘서울프레스’ 기고를 통해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3·1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일본을 비판했다. 또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노순경, 유관순, 이애주 등 여성지도자와 여학생들의 고문과 폭력의 흔적을 확인하고 하세가와 총독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그리고 9월 일본 동경에서 극동지구 파견 기독교 선교사 800여 명을 만난 자리에서 3·1운동의 참상을 고발했다. 아울러 그 해 4월에 일본이 저지른 화성시 제암리 주민 학살의 진상을 알렸다. 결국 스코필드 박사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와의 계약 기간이 종료된 1920년 ‘과격한 선동가’로 낙인찍혀 비자 연장을 받지 못해 방한 4년 만에 캐나다로 돌아가야 했다.
캐나다로 돌아간 스코필드 박사는 명실상부한 수의학의 대가가 되었다. 그는 와파린 연구로 유명해졌다. 2009년 캐나다 연방정부는 그를 국가역사인물로 지정했다.
은퇴한 스코필드 박사는 1958년 대한민국 정부 초청을 받고 한국을 다시 찾았다. 서울대 수의학과 초빙교수로 근무하며 수입에서 일부만 생활비로 떼어놓고 나머지는 어려운 학생들의 장학금과 보육원 지원비로 썼다. 또한 그는 1970년 81세로 소천할 때까지 대학생과 고교생들에게 바이블 클래스를 열고 열강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크게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정직이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결국 수많은 거짓말의 늪에 빠진다고 가르쳤다. 오늘날 한국은 정직한 사회인가? 내가 보기에는 정직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둘째는 어려운 사람은 비둘기의 자애로움으로, 강한 사람, 특히 불의한 강자는 호랑이의 날카로움으로 대하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는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가. 강자 앞에서는 어떤 모습인가. 스코필드 박사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게 아닌가. 몹시 부끄럽다.
우리는 스코필드 박사에게 충분한 감사 표시를 했는가? 정부는 소천하기 바로 전에 건국 훈장을 수여했다. 토론토 동물원에 크고 멋있는 동상을 세웠고, 그 주변에 코리아 가든을 조성 중이다. 화성시 제암리와 연세대에도 조그마한 동상이 있다.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했고 2016년에는 첫 방한 100주년 기념행사도 벌였다. 그리고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는 작년까지 수년간 돈의문박물관마을에 스코필드 기념관을 열고 그의 유품을 전시했다. 하지만 그 기념관이 개발 명목으로 폐쇄된 것은 무척 안타깝다. 우리가 그에게서 받은 것에 비하면 감사 표시는 미미하다. 진정한 감사는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정의롭고 정직한 한국 사회를 만드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 약자를 돌보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가 세계에 알린 3·1운동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 또한 우리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3·1운동 기념관을 건립하여 3·1 정신을 부활시키자고 제안한다.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평화적 비폭력 운동이었다. 중국의 5·4운동과 인도 간디의 무저항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고 훗날 우리의 독립 의지를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우리가 오늘날 겪고 있는 혼탁한 세상을 걱정하면서도 이를 바로잡을 정신적 토대를 세우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 3·1 정신을 기억하는 공간을 세우는 일은 막연히 과거를 기리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나라를 지향하는지 스스로 묻는 일이다. 3·1 정신에 스코필드 박사의 가르침을 더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