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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숙고를 몇년이나" 질타에도…식약처, 낙태약 꿈쩍 않는 이유

중앙일보

2026.03.03 12:00 2026.03.03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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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여성단체와 보건단체 등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이 1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고 유산유도제 즉각 도입,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재생산 및 성에 관한 건강과 권리 포괄적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의 "숙고를 몇 년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지난해 12월 업무보고)는 질타에도 정부의 국정 과제인 임신중지 약물(낙태약) 도입 절차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로 드러났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정부와 국회가 후속 조치를 미루면서 제도 공백이 7년째 이어지면서다.

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자료 등에 따르면 임신중지 약물(낙태약) 도입 절차는 관계 부처 간 입장 차이로 제도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성평등가족부·보건복지부는 “여성 건강을 위해 임신중지 약물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 허용 여부와 허용 기간이 법률로 정해져야 허가 심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성평등부·복지부·법무부·식약처 등 관계 부처는 지난해 9~10월 회의를 열고 임신중절 전반에 대한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이후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성평등부는 “여성의 안전ㆍ건강을 위해 최대한 빨리 도입해야 한다”며 서두르지만, 의약품 허가 주무 부처인 식약처가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 허용 여부와 임신중지 허용 기간이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낙태가 허용되는 임신 주수가 법률에 명시돼야 유해성 평가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남 의원실에 따르면 식약처는 이와 관련해 외부 법률자문을 여러 차례 받았고, 자문 결과 “모자보건법 개정과 무관하게 약사법 체계에서 품목허가가 가능하다”는 취지의 답변이 중론이었다. 남인순 의원은 "낙태죄의 효력 상실로 품목 허가를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없음에도 허가를 거부하는 것은 식약처의 재량권 남용"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성평등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약물 도입을) 정부는 모른 척하고 방치하고 그런 상태죠?"라고 물었다. 원민경 장관이 "여러 부처가 함께 숙고하고 있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숙고를 몇 년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가 '법률 개정이 먼저'라는 식약처 입장을 설명하자, 이 대통령은 성평등부를 향해 "행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느냐"고 물었고, 원 장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김경진 기자
입법도 지지부진하다. 현재 22대 국회에는 관련 법안 4건이 발의돼 있으나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2020년 21대 국회에서는 임신중절 방법에 약물 투여를 포함한 정부안이 제출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정부 관계자는 "성평등부와 식약처, 부처 간 입장이 다른 데다 국회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적극적이지 않다"라고 전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국회에서 법을 만들지 않는 이상 주무 부처의 역할은 제한적"이라며 "입법 책임이 있는 국회가 역할을 미루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경진 기자
입법·행정 공백 속에 낙태약 불법 유통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온라인 불법 유통으로 적발된 사례는 682건으로, 최근 5년간 2971건에 달했다. SNS에서는 약물 판매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엑스(X)를 통해 접촉한 한 판매자는 "18만원을 주면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는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약은 성분 등을 확인할 수 없어 매우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임신중지 약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필수의약품으로, 독일·프랑스·영국·일본 등 100개국에서 사용 중이다. 성평등부와 여성계는 입법 전이라도 약물 도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지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활동가는 "정부가 정식으로 도입해 여성들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임신중지를 더는 ‘음지’에 두지 말고, 안전한 보건의료체계 안에서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한다”며 “임신중지 약물의 허가 등 제도 정비를 통해 여성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혜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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