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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하는 주민 얘기 끝까지 들었다, 방폐장 77% 찬성 이끈 加 해법

중앙일보

2026.03.03 12:00 2026.03.03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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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물 시설에 반대합니다.”

수년 전 캐나다 온타리오주 이그너스에서 열린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관련 주민 설명회. 한 남성이 들어와 이렇게 소리쳤다. 그는 반대 의견만 밝히고 바로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캐나다 방사성폐기물관리기구(NWMO) 관계자들이 “의견을 들려달라”며 그를 붙잡았고, 주민들의 입장을 충분히 경청했다. 주민들도 대화를 통해 정부 입장에 일부 공감했다.

지난 1월 22일 토론토 NWMO 본사에서 만난 리사 프리젤 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이 방폐물 처분시설 부지선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꼽은 장면이다. 프리젤 부사장은 “부지 선정은 10년 이상이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라면서도 “그래도 주민들이 ‘싫다’고 말하던 데서 ‘조금 더 알아보자’로 돌아서는 순간, 비로소 절차가 앞으로 나아갔다”고 설명했다.

캐나다 방사성폐기물관리기구(NWMO)의 리사 프리젤 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을 지난 1월 22일(현지시간) 만났다. 프리젤 부사장은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게 될 저장용기 모형을 들어보이며 "주민들에게도 안전성을 단순히 말로 설명하기보다, 직접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한국도 이 같은 과정의 출발선에 서 있다. 원자력 발전으로 나온 고준위 방폐물(사용후핵연료)은 현재 각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에 보관돼 있지만, 용량이 얼마 안 남았다. 2030년부터 한빛·한울·고리 원전 등이 차례로 ‘포화’ 상태에 이를 전망이다. 방폐물을 격리하는 영구 처분시설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캐나다는 지난 2024년 최종 부지를 확정했다. 한국은 지난달 말 ‘고준위방폐물관리위원회’ 첫 회의를 열면서 부지선정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캐나다는 14년에 걸쳐 이 문제를 풀었다. NWMO를 중심으로 2010년 시작한 부지선정 과정에 22개 지역이 참여했고, 적합성 평가와 주민 소통 등을 거쳐 후보지를 좁혀나갔다. 프리젤 부사장은 큰 사회적 갈등 없이 부지를 확정할 수 있었던 비결로 “원하지 않는 지역사회에 강요하지 않는 원칙”을 꼽았다.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동의한(informed and willing) 지역에서만 추진한다는 원칙을 처음부터 세웠다”는 것이다.

차준홍 기자

부지 공모에 참여한 지역은 설명회를 통해 사업의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었고, 원하면 언제든 절차에서 빠질 수도 있었다. 실제로 22개 지역 중 한 곳은 중도 하차했다. 주민 우려에 대한 대응도 무리한 설득보다 ‘정보 제공’에 방점을 뒀다. 그는 “주민들은 (방폐장이 생기면) 지하수는 안전한지, 방폐물이 운반될 때 안전한지에 대한 우려가 컸다”며 “억지로 설득하기보다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정보를 직접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가령 “핵연료는 액체라 땅속에서 누출될 수 있다”고 걱정하는 주민이 많았는데, 사용후핵연료는 고체라는 점을 직접 보여주고 실제 저장용기 모형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후보지 주민 대표단을 핀란드가 이미 완공한 처분시설로 견학 보내 직접 확인하도록 하기도 했다.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만난 캐나다 방사성폐기물관리기구(NWMO)의 피터 키치 엔지니어링 매니저가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시설 모형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남수현 기자
캐나다 방사성폐기물관리기구(NWMO)의 디스커버리 센터. 방폐물 처분시설의 안전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각종 시각자료와 벤토나이트 등 핵심 소재가 놓여있다. 남수현 기자

방폐장의 기술적 안전성에 대해선 ‘다중 방어체계’를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으로 주민 이해도를 높였다. 피터 키치 NWMO 엔지니어링 매니저는 “기본적으로 여러 겹의 장벽이 함께 작동하는 방식으로 안전을 확보한다”고 설명했다. 연료 자체의 낮은 용해도, 부식에 강한 피복관, 구리 코팅된 용기, 물 흐름을 차단하는 벤토나이트 점토 등이 겹겹이 방사성 물질을 차단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키치 매니저는 “(방폐장에 사용될) 소재를 실제로 보여주면 사람들은 ‘걱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최종 결정은 지역사회의 몫이었다. 최종 후보지로 선정된 온타리오주 이그너스 지역은 설문과 청년층 대상 포커스그룹 조사 등을 거쳐 판단했다. 그 결과 투표에서 77% 이상이 찬성 의사를 밝혔다.

한국에 대한 조언을 묻자 프리젤 부사장은 “서두를수록 오히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지역사회와 협력해 진정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어느 정도 그들의 주도권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 경험상 이 과정을 서두르려고 하면 사람들이 더 참여를 꺼려 결국 더 오래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과 보조를 맞춰 필요한 정보를 함께 확인해 가는 과정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차준홍 기자



남수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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