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흉부외과의 ‘살아 있는 전설’ 조범구(87·이하 경칭 생략) 의사에게 ‘일’이란 그런 것이었다. 누군가에겐 ‘그만하면 됐다’ 싶은 일도 그는 결코 타협할 수 없었다.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일주일간 밤낮없이 수술실과 연구실을 지키는 일은 그에게 당연한 일상이었다.
평생을 이토록 가혹할 만큼 엄격한 기준으로 스스로를 밀어붙이며 살았다. 매 순간이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극한의 스트레스에 내몰릴수록 역설적으로 더 완벽하게 일을 해냈다. 간혹 노력 끝에 결과가 좋지 못한 날에는 아이처럼 땅을 치며 자책할 만큼 그는 자신의 일에 온 마음을 다 바쳤다.
평생 남의 심장을 고치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아부은 탓에 정작 자신의 몸을 돌보는 일은 늘 뒷전이었다. 40년 넘게 끼니 한번 제때 못 챙겼고 잠 한번 느긋하게 청한 법 없었다. 새벽 3시에도 응급 호출이 울리면 즉시 몸을 일으켰고, 잠깐이라도 틈이 나면 쉬기보다 더 나은 수술법을 찾으려 애썼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기꺼이 반납한 지독한 ‘워커홀릭’이자 ‘완벽주의’였다.
누가 봐도 건강을 해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실제로 흉부외과의 살인적인 스트레스와 혹독한 과로를 견디지 못한 젊은 후배들이 방광암 등 예기치 못한 병마로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조범구의 건강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9년, 그의 나의 예순이 됐을 때다. 수술실에서 전공의에게 버럭 화를 낸 적이 있다. ‘화낼 일이 아닌데 내가 왜 이러지’ 이상하다 싶어 건강검진을 해봤더니 결과는 고혈압과 당뇨. 몸이 보낸 적신호였다.
제 한 몸 간수하지 못한 자신에게 크게 실망한 그날 이후, 조범구는 자신의 몸을 세심하게 돌보기 시작했다. 〈100세의 행복2〉 10화엔
일분일초를 다투는 피 말리는 의료 현장에서 남의 생명을 살리고 자신의 건강도 지켜낸 87세 백전노장, 조범구의 이야기를 담았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흔히 집착하는 ‘8시간 꿀잠’이나 ‘무조건적인 휴식’ 같은 강박이 그에겐 보이지 않았다.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 즉 건강 상식에 역행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감당해온 그의 삶 속엔 본인조차 미처 깨닫지 못한 특별한 생존법이 숨어 있으리라.
조범구는 흉부외과 의사 중에서도 체중 3㎏에 불과한 신생아의 조그마한 심장을 다루는 소아심장전문 의사다. 한국 선천성 심장기형 환아 수술 분야의 권위자인 그가 진료한 어린이 환자는 3만여 명, 수술 받은 아이만 하루에 4~5명으로 총 2000여 명이다. 심장 수술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1991년 국내 최초로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질환 전문센터를 세우며 역사를 쓴 인물이다.
조범구에게 ‘수면의 질’을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일주일씩 밤샘 수술에 매진하고 새벽 3시에 울리는 호출 전화에도 재까닥 응대했다는 그에게 숙면이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보통의 노년들이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밤을 ‘병’으로 여기며 수면제에 의존할 때, 지금의 그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잠 안 오면 침대에서 일어나 그냥 딴 일 하면 되지. 뭘 그렇게 잠들려고 애쓰나요.
그는 불면과 싸우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1~2시, 침대에서 벗어나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대신 베개에 머리를 대면 통잠을 잔 뒤 오전 7시 30분엔 맑은 정신으로 일어난다. ‘자야 한다’는 강박 대신 깨어 있는 시간을 즐기는 그의 쿨한 수면관이었다.
(계속)
조범구에게 ‘맛집’이나 ‘식도락’은 사치였다. 메뉴가 무엇이든 음식은 그저 다음 수술을 위한 체력 비축용 연료였을 뿐이다. 특별한 보약도, 귀한 식재료도 찾지 않는 그에게 먹는 즐거움 없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었다.
" 내가 먹는 거엔 영 취미가 없는데, 아무리 바빠도 아침은 꼭 챙겼어요. 이 음식을 매일 빼놓지 않고 먹었죠. "
화장실 갈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는 흉부외과 의사가 살기 위해 먹는 식단이 있었다. 극한의 스트레스 속에서도 정신과 체력이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