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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동맹국에 '장대한 분노'…"스페인과 모든 무역 중단" 왜

중앙일보

2026.03.03 20:22 2026.03.03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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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한 분노(Epic Fury)’로 명명한 작전으로 이란에 대대적 공습을 감행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분노가 엉뚱하게 동맹국을 겨냥했다. 이란 공습을 위해 요청했던 군(軍)기지 사용을 거부한 영국과 스페인을 향해 공개 비난을 퍼부으면서다.
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열린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의 회담 중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 공습을 위해 요청했던 군기지 사용을 불허한 스페인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스페인과의 모든 무역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AFP=연합뉴스

특히 스페인에 대해선 “정말 끔찍하다”며 모든 무역 거래를 끊어버리겠다고 선언했다. 관세와 그린란드 병합 문제에 이어 이란 공습을 거치며 미국과 유럽의 80년 ‘대서양동맹’이 본격적 균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敵이었던 독일 앞에서 “英에 처칠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영국이 어리석은 섬 문제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게 행동하며 (미국과의) 관계를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이 이란 공습을 위해 요청한 차고스제도 공군기지 이용을 불허했던 점을 지적한 말이다.

지난해 6월 16일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기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과의 무역 협의 사안을 정리한 서류를 바닥에 떨어뜨리자,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이를 황급히 주워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윈스턴 처칠이 아니다”라며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처칠 전 총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함께 연합군을 이끌었다. ‘영국에 처칠이 없다’는 말은 대서양동맹 자체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 말로 해석된다. 특히 해당 발언을 2차대전 당시 연합군과 적(敵)으로 싸웠던 독일 정상 앞에서 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았다.



“스페인 끔찍하다…무역거래 전면 중단”

해군 및 공군기지 사용을 차단한 스페인과는 아예 무역 거래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페인이 국방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5%로 올리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며 “끔찍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13일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가자 전쟁 종식을 위한 세계 정상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면서 “스페인과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며 “스페인과의 모든 무역을 중단하겠다. 스콧(베센트 재무장관)에게 스페인과의 모든 거래를 끊으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연방대법원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 부과를 위법으로 결론냈지만, 관세가 아닌 무역제재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다만 지난해 미국의 대(對)스페인 무역수지는 48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외교 소식통은 “흑자를 내는 스페인과의 무역은 제재 발동을 위한 비상사태에 해당하기 어렵다”며 “더구나 미국은 스페인이 아닌 유럽연합(EU)과 무역 합의를 맺은 상황에서 스페인만 무역을 중단한다는 선언 자체가 비상식적”이라고 했다.



“국제법 위반” 주장 무시…EU 속속 이탈?

앞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미국의 이란 공습 직후 “이번 공격은 정당화할 수 없고 위험한 군사 개입이자 국제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냈다. 아무리 동맹국이라도 국제법에 위반되는 군사 행동에 자국의 기지를 내어줄 수 없다는 의미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2일 일롱그 핵잠수함 기지를 방문해 병사들을 사열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의 이란 공습을 강하게 비난하며 역외 자국 기지 방어를 위해 항공모함 파견을 결정했다. AFP=연합뉴스
스페인이 미국의 사용을 불허한 카디스의 로타 해군기지와 세비야의 모론 공군기지는 스페인 내 대서양동맹의 상징적 역할을 해온 곳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란 공습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프랑스는 이를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태에서 이란의 공격을 받고 있는 동맹국들의 역외 기지 방어에 나서기로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핵추진 항공모함인 샤를드골함과 호위함을 지중해로 출격시켜 자국 기지를 방어하는 한편, 결국 미국에 사용을 허가한 뒤 이란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영국의 키프로스 기지에 대한 방공망 지원을 결정했다.

2일에는 유럽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 보유량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유럽 안보에서 발을 뺄 움직임을 보이자 유럽에 ‘프랑스 핵우산’을 씌우는 방안 등 유럽 국가끼리의 자체 안보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프랑스는 영국의 탈퇴 후 유럽연합(EU)의 유일한 핵보유국으로, 1990년대 초까지 핵탄두 약 540기를 보유했으나 이후 자발적으로 감축해 현재 약 290기를 갖고 있다.
프랑스 해군 장병들이 지난 2일 프랑스 크로종에 위치한 일롱그 핵잠수함 기지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도착을 기다리며 도열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대서양동맹 균열에도…노골적 ‘줄세우기’

트럼프 대통령은 대서양동맹에 균열이 확대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날 메르츠 독일 총리를 만나서는 “독일은 훌륭하다”며 유럽 동맹에 대한 ‘갈라치기’ 전략을 구사했다.

영국과 스페인을 노골적으로 비난한 트럼프 대통령은 “그(메르츠 총리)는 정말 대단했고, (스페인 등을 제외한)다른 나라들도 매우 좋았다”며 “특히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수장인 마르크 뤼터는 환상적”이라고 치켜세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3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회동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자 최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는 등 중국과 밀착했던 메르츠 총리는 입장을 ‘급선회’해 “이스라엘과 미국 군대가 전쟁 조기 종결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고 있기를 희망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공습 작전에 힘을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뤼터 총장은 별도 회견에서 “이란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역량을 갖추는 데 근접했다”며 “이는 중동뿐 아니라 유럽에도 큰 위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는 명백히 미국과 이스라엘이 주도한 작전”이라며 선을 그었다.





강태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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