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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2억으로 '천국' 만들었다…전국 최초 '놀라운 경로당' 정체

중앙일보

2026.03.03 21:40 2026.03.0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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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대전시 중구 문화동 평화아파트 경로당에서 어른신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전 중구는 전국 최초로 아파트를 매입, 경로당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신진호 기자
지난 3일 오후 2시 대전시 중구 문화1동 평화아파트. 20여 명의 어르신이 떡과 음료수 등 간식을 먹고 있었다. 안방에는 남성, 작은방에는 여성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이날 오전 발인한 아파트 주민 얘기도 오갔다. 이 집은 일반 가정이 아니라 평화아파트 경로당이다. 지난해 4월 문을 열었으니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아파트가 경로당이 된 사연은 이렇다.

1992년 세워진 평화아파트는 140세대가 사는 작은 단지다. 세대가 적고 아파트도 1개 동에 불과하다 보니 다른 아파트단지와 달리 경로당을 따로 마련하지 못했다. 2013년 관리사무소 옆에 작은 방을 만들어 경로당으로 사용했지만, 남녀가 구분되지 않고 화장실도 한 개라 불편했다. 주방도 밖에 설치돼 한여름엔 더위, 한겨울엔 추위를 견뎌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로당을 찾는 어르신들의 숫자도 점점 줄어갔다.



대전 중구, 전국 최초 아파트 매입 경로당 전환

주택가 경로당의 경우 정부 지원을 받아 신축이나 리모델링이 가능하지만,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대상에서 제외돼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시설개선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대전 중구는 묘안을 짜냈다. 중구가 아파트 1채를 매입한 뒤 대전시로부터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받아 경로당을 새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주택가 경로당은 부지 매입부터 신축까지 최소 5~6억원, 많게는 10억원이 필요하지만, 원도심의 30~40년 된 아파트는 가격이 저렴해 2억원 이내에서 구입할 수 있는 데다 구(區)의 자산으로 등록, 재산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아파트를 매입해 경로당으로 전환한 건 전국에서 대전 중구가 처음이다.
대전 중구 문화동 평화아파트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이 좁은 경로당에 모여 있다. 대전 중구는 전국 최초로 아파트를 매입, 경로당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진 대전 중구]
대전 중구는 이용에 불편이 많은 경로당 20곳을 선정한 뒤 2024년부터 순차적으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아파트에 마련되는 경로당은 모두 1층이다. 어르신들의 이동에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사업 첫해 평화아파트를 매입,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지난해 2월 입주를 마쳤다. 문화1동 평화아파트의 경우 경로당을 새로 마련하는 데 매입비 1억7080만원에 리모델링비 6000만원 등 2억3060만원이 들어갔다. 부지를 매입한 뒤 경로당을 짓는 비용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신축 대비 4분의 1 수준…예산 절감 효과

평화아파트 송인근(79) 노인회장은 “작년에 경로당을 새로 열었을 때 주민 모두가 와서 놀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며 “6평 좁은 공간에서 지낸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천국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대전 중구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4.6%로 대전지역 5개 구(區) 가운데 가장 높다. 경로당 수는 149개로 이 가운데 아파트 경로당이 74개, 주택경로당이 75개다. 이 중 30~40년 된 경로당이 수십 개에 달한다. 대부분 노후하고 공간이 협소한 데다 일부 경로당은 남녀가 방과 화장실을 함께 사용해 리모델링 등 환경개선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대전 중구 금성백조아파트 권용기 노인회장이 경로당으로 사용하기 위해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인 아파트를 살펴보고 있다. 신진호 기자
중구가 지난해 매입한 중촌동 금성백조아파트(29평)는 2월 말 공사를 시작했다. 금성백조아파트 경로당 공사에는 매입비 1억9000만원(구비)과 리모델링비 7800만원(시비) 등 2억6800만원이 투입됐다. 3일 오전 찾은 금성백조아파트는 낡은 창문을 뜯어내고 문턱을 모두 없앤 상태였다. 베란다에는 더위와 추위를 차단할 수 있도록 이중창이 새로 설치된다. 화장실이 딸린 안방은 여성, 작은 방은 남성이 사용하고 문간방은 사무실로 쓸 예정이다. 경로당은 4월 초 공사를 마치고 새로 문을 열게 된다. 금성백조아파트 노인회 권용기(79) 회장은 “회원들 모두 경로당이 새로 문을 열기만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올해 3개 아파트 추가 매입…다른 시·도 벤치마킹

대전 중구는 올해 산성동 동원가든아파트와 태평2동 삼부1단지아파트, 목동 현대아파트를 1채씩 매입, 경로당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들 3개 아파트 리모델링을 위해 4월쯤 대전시에 특별조정교부금 2억800만원을 신청할 예정이다. 대전 중구가 아파트를 경로당으로 전환, 사용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전지역 4개 구(區)는 물론 다른 시·도에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줄을 이어 찾아온다고 한다.
노후한 경로당을 대체하기 위해 대전 중구가 매입한 금성백조아파트 1층에서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신진호 기자
이 사업은 2022년 말 주민과의 대화를 위해 대전 중구를 찾은 이장우 시장에게 이인상 대한노인회 대전중구지회장이 건의하면서 시작했다. 당시 이 지회장이 낡은 경로당의 현실을 알리고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청하자 그 자리에서 이장우 시장이 예산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노후 경로당 문제를 해결했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다. 기존 경로당과 달리 아파트는 관리비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금성백조아파트처럼 입주자들이 경로당은 관리비의 절반만 내도록 배려하는 곳도 있지만, 리모델링을 앞둔 다른 경로당은 매달 20만~30만원에 달하는 관리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대전 중구는 정부 차원이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전 중구 "적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공사 마무리"

대전 중구 최순덕 노인장애인과장은 “아파트 매입방식은 적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게 장점 중 하나”라며 “고독사와 독거노인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공간인 경로당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진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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