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곡한 고층 빌딩과 수많은 사람이 바삐 오가는 도심 풍경을 지켜보던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한국이 ‘내 나라’는 맞지만, 진짜 ‘내 집’은 아니에요. 내 아들, 내 딸, 내 어머니… 가족이 다 미국에 있잖아요. 정말 내 집으로 가고 싶어요.”
가족 이야기를 하던 그는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영주권자였던 박씨는 지난해 6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참전용사다. 1989년 파나마에서 전투 중 총상을 입고 죽을 고비를 넘긴 뒤 퍼플 훈장을 받았다. 〈본지 2025년 6월 25일자 A-1면〉
나라를 위해 싸웠던 박씨에게 미국 정부는 ‘추방’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추방 전까지 그의 발목에 위치 추적이 가능한 전자발찌까지 채웠다.
박씨는 7살 때 부모를 따라 이민을 갔다. LA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한인 사회의 아픔인 LA 폭동을 겪으며 부모가 운영하던 가게가 불에 타는 모습도 지켜봐야 했다.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난 그에게 미국은 삶의 터전이자 한국보다 더 고향 같은 곳이었다. 48년을 그렇게 미국에서 살았다.
그는 전투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다 청년 시절 한때 약물에 손을 댔다. 잘못에 대한 대가는 법적으로 이미 치렀다. 복역 후 추방 명령을 받았지만,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며 보고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 하와이에서는 자동차 딜러에서 일하며 두 자녀도 키웠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과거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한 기록이 그의 모든 삶을 대신할 뿐이었다.
“나는 추방으로 인해 모든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해요. 내 집, 내 터전, 내 가족, 내 직장… 하루아침에 생이별을 하게 된 거잖아요. 철저하게 나 혼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지게 된 거죠.”
서울 광화문 주한미국대사관 입구에서 박세준 씨가 생각에 잠겨 있다.
그가 전자발찌를 떼고 한국에 도착한 날은 2025년 6월 24일이다. 이후 모든 것을 홀로 감내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야구 경기를 보러 갔어요. 물론 혼자였죠. 여기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돌아다닐 때는 괜찮다가도 갑자기 외로움이 마구 밀려와요. 한동안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이유도 없이 몇 시간씩 울기도 했어요.”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다시는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든 갈 수 있지만 미국만은 예외다. 하와이에 있는 노모가 세상을 떠나도, 딸이 결혼을 해도 그는 법적으로 평생 미국 땅을 밟을 수 없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고 가족이 여전히 미국에 살고 있지만, ‘추방자’라는 낙인은 그가 미국 땅을 다시 밟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다.
박씨는 현재 변호인들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법적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예요.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니까요. 다시 돌아가서 아이들과 외식도 하고, 엄마도 보고 싶어요. 친구들과 골프도 치고 싶고요. 특별한 삶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요.”
지난 2017년 LA에서 추방된 박진우 씨. 왼팔에는 한국에서 새긴 'California' 문신이 있다.
경기도 평택에는 주한 미군 기지인 캠프 험프리스가 있다. 부대 인근의 작은 물류회사 ‘일우’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박진우(53) 씨는 한국 생활 8년 차다. 미군이 한국으로 오거나 해외로 이동할 때 이삿짐을 운송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박씨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최근 추방된 한국인 두 명을 우리 회사에 취직시켜 줬다”고 했다.
그 역시 25년간 미국에서 살았다. 영주권자였던 그는 2017년 LA에서 추방됐다. 앞서 2014년에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됐고, 당시 검찰은 그에게 45년형을 구형했다.
박씨는 “뚜렷한 혐의가 드러나지 않자 성매매 혐의로 변경돼 결국 7년형을 선고받았다”며 “구치소에 3년간 있었고, 그 기간을 두 배로 계산해 1년을 더 복역한 뒤 7년 형량을 채운 것으로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그때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한 시기였다. 형기를 마치자 곧바로 추방 명령이 내려졌고, 그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자신이 추방자이기 때문에 추방자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박씨는 “막 추방돼 한국으로 왔는데 그들이 한국 사회의 복잡한 시스템을 어떻게 알겠느냐”며 “나는 이미 한 번 겪어봤으니 주민등록증 발급, 은행 계좌 개설 같은 것을 도와주고 필요하면 거처나 직업도 소개해준다”고 말했다.
그의 왼쪽 팔에는 ‘California’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한국에 와서 새긴 것이다.
박씨는 “내가 살았고 의미가 있었던 곳을 몸에 남겼다”며 “그렇지만 설령 미국으로 다시 갈 수 있다 해도 이제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정말 이민자의 나라라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박씨는 “수많은 ‘Made in USA’ 제품을 지금 누가 만들고 있느냐”며 “이민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는 그들을 쫓아내려 하고 있다. 나는 미국이 더 이상 이민자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