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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증거조작, 살인·강도보다 나쁜 짓”…‘사법 3법’ 거부권 거부

중앙일보

2026.03.04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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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4일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정의 실현을 하라고 국민이 맡긴 수사·기소권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빼앗고 감금하기 위해 하는 증거 조작, 사건 조작은 일반 범죄자가 저지르는 강도나 납치, 살인보다 더 나쁜 짓”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이 법 왜곡죄법,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 등 ‘사법 3법’에 대해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최대 쟁점인 법 왜곡죄법에 힘을 보태며 사실상 거부권 행사 요구를 일축한 것이다.

필리핀을 국빈 방문 중인 이 대통령은 순방 마지막 날인 이날 오전 마닐라 현지에서 X(옛 트위터)에 이같이 적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에 대한 진술 조작이 이뤄진 정황을 다룬 언론 기사를 공유했다. 기사에는 김 전 회장이 2023년 3~6월 “이 대통령에게 돈을 준 사실이 없다”거나 “검찰이 이 대통령을 엮으려고 허위 진술을 회유한다” 등의 취지로 말한 구치소 접견 녹취록이 담겼다.

법 왜곡죄(형법 개정안 제123조의2)는 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은닉·위조·변조하거나 위조·변조된 증거를 알면서 재판·수사에 사용한 경우, 해당 사건을 맡은 판·검사를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법률이다. 이 대통령이 ‘증거 조작, 사건 조작’을 콕 집어 언급한 데 대해 여권 관계자는 “자의적 법 적용에 대해 처벌하도록 한 법 왜곡죄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이 4일 X를 통해 분명한 입장을 내기 전까지 사법부에선 법 왜곡죄 반대 주장이 확산하는 분위기였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전날 출근길에 “우리 제도를 근거 없이 폄훼하거나 법관들의 개별 재판을 두고 악마화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국민들께서 심사숙고 해주시길 부탁드린다”며 사법 3법에 공개 반대했다. 일부 여권 인사도 이런 흐름에 동조했다.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은 이날 공개된 본지 인터뷰에서 “법 왜곡죄는 대한민국 법치의 수치”라며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고,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강고한 입장이 알려지자 이날 여권의 표적은 ‘조희대 사퇴’로 좁혀졌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조 대법원장을 향해 “지금 사법 개혁에 대한 저항군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것이냐”며 “사퇴도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 거취를 표명하기 바란다”고 거듭 요구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국민이 입혀 준 법복을 입고 ‘헌법과 법률’ 뒤에 숨으면 썩은 냄새까지 사라지는 줄 아느냐”며 “하루속히 사퇴하는 것만이 ‘법’의 신뢰를 회복하고, ‘법원’을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압박했다.


조 대법원장 탄핵 주장도 분출했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조 대법원장 탄핵을 논하는 세미나에 참석해 “조 대법원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사법 개혁도 몹시 어려워 진다. 돌파구는 탄핵뿐”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박 대변인은 “당 지도부 차원에서 탄핵을 논의하거나 계획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이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수사를 ‘증거 조작, 사건 조작’이라고 표현한 데 대해 “사법 체계 전반의 정당성을 뒤흔든다”고 비판했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8개 사건, 12개 혐의로 받고 있던 5개의 재판은 대통령 당선으로 절차가 멈춰 있을 뿐 결코 면죄부를 받은 것이 아니다”며 “대통령이 방탄에 목을 매니 민주당은 이런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사법 학살’을 자행하고, 이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를 추진하겠다며 별도의 특위까지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법 3법은 조만간 공포될 가능성이 크다. 이르면 5일 열리는 임시 국무회의에서 처리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국회와 여당 논의를 존중하는 입장”이라며 “국회 논의 과정이 있는데, 그걸 다 무시하고 거부권을 행사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사법 3법에 대해 내부에서 아직 명시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과거 인연이 있는 노동자 아리엘 갈락 씨를 접견하고 있다. 뉴스1



李 대통령, 필리핀에 ‘마약왕’ 임시 인도 요청


이 대통령은 4일 마닐라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 참석해 필리핀 내 한국인 대상 범죄자에 대한 엄벌을 강조했다. 특히 필리핀에서 징역 60년형을 받고 수감 중인 ‘마약왕’ 박모씨를 언급하며 “한국 사람 3명을 살해했다고 하고, 교도소 안에서 지금도 대한민국으로 마약을 수출하고 있다고 한다”며 “(필리핀에) 임시 인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필리핀 노동자 아리엘 갈락을 만났다. 1992년 갈락이 한국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를 당하고도 보상을 받지 못한 채 필리핀으로 귀국하자 변호사이던 이 대통령은 산업재해보상금을 받도록 재심 절차를 도왔다.

이 대통령은 3박4일 간의 싱가포르·필리핀 순방을 마치고 4일 오후 귀국길에 올랐다.



오현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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