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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 지연 폭탄’도 터지나…산업계, 중동 속앓이

중앙일보

2026.03.0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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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사우디 생산법인(HMMME) 공장 조감도. [사진 현대차]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이란의 강경 대응으로 중동 정세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국내 산업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현지 인프라 발주 지연, 국제유가와 해상운임 급등, 공급망 차질 우려 등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중동 현지 프로젝트를 수행 중인 기업들은 발주처의 의사결정 지연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착공 일정이 늦어지거나 금융 조달 여건이 경색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중동 사업은 단순 제품 수출과 달리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 비중이 높아 외부 변수에 취약한 구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등 초대형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긴장 국면이 이어질 경우 일부 사업의 진행 속도가 더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주원 기자
삼성은 중동에 건설·연구·영업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사우디에서는 삼성물산이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고, 이스라엘에는 반도체 연구시설을 두고 있다. 현대차는 사우디 킹 살만 자동차 산업단지에 연산 5만 대 규모의 전기차·내연기관차 혼류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다. 현지 생산거점을 축으로 중동 시장 공략을 강화하는 시점에 지정학 리스크가 변수로 부상했다.

LG와 GS 역시 현지에서 판매·건설·부동산 사업을 병행하고 있어 신규 프로젝트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GS는 오만에만 8개 법인을 두고 플랜트·건설 사업을 수행 중이며, LG는 중동에서 판매법인과 일부 인프라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전력·기계 업계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중동은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의 최근 핵심 해외 시장으로 부상했다. 효성중공업·HD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 등은 사우디·UAE·쿠웨이트 등에서 송전망 확충과 발전 인프라 사업을 수행해왔다. 대한전선과 LS전선 역시 초고압 케이블과 해저 케이블을 공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초고압 변압기나 발전 설비는 발주부터 제작·해상 운송·현지 설치까지 수년이 걸리는 게 일반적”이라며 “발주처의 의사결정이 늦어지면 공정이 밀리면서 매출 인식 시점도 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가·물류비 등 비용 부담 요인도 커지고 있다. 먼저 해상운임이 급등 조짐이다. 발틱해운거래소에 따르면 발틱원유유조선지수(BDTI)는 2일 중동~극동 노선 기준으로 42만3736달러를 기록했다. 한 달 전 12만8799달러와 견줘 세 배로 뛰었다. BDTI는 27만t 이상 초대형 유조선(VLCC)의 하루 용선료를 뜻한다. 용선료는 향후 실제 운임으로 이어지는 선행지표라는 점에서 원유 수입비용과 물류비 전반에 추가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커졌다. 해운 업계는 유조선 운임 상승이 벌크선과 컨테이너선으로 확산될 경우 수출 기업의 물류비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

가뜩이나 업황 부진을 겪고 있는 건설사들도 원가 상승 및 수익성 저하 리스크에 직면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유가가 60% 상승할 경우 건축물 생산비용은 1.5%, 토목시설 생산비용은 3% 증가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기존에도 원자잿값 상승 문제로 공사에 어려움이 컸는데, 전쟁이 겹치면서 공사 지연과 공사대금 미지급 등 문제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중동 인프라 발주 지연은 건설·플랜트·전력기기 등 수주 산업 전반에 구조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기업의 수익성 악화와 투자 위축, 현금흐름 경색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영우.김준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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