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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 영웅전] 여성참정권자 데이비슨의 죽음

중앙일보

2026.03.04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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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개항 이래 한국에 온 서양 선교사나 학자 또는 탐험가들은 여성 학대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채우면서 조선을 야만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서양도 여성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성경에 보면 여성은 인구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고, 19세기까지 선거권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영국의 에밀리 데이비슨(1872~1913)이 여성참정권 운동을 전개했다. 옥스퍼드대학 영문과 출신인 그는 여성참정권협회(WSPU)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하면서 관리의 집에 돌을 던지고, 우체통에 불을 지르는 등의 투쟁을 전개하다 투옥되고, 감옥에서 단식자살(VSED)을 시도했으나 49회의 음식물 강제 투입으로 살아났다.

1913년 6월 8일, 데이비슨은 영국 최고의 전통을 가진 엡솜경마대회에 참관하러 들어갔다. 그 경기에는 국왕 조지 5세의 말 안메르도 참가했다. 그는 경마 마지막 바퀴의 코너에서 여성참정권 깃발을 들고 국왕의 말에 뛰어들어 등자를 잡고 끌려가다가 말에 채어 죽었다(사진). 정부는 그가 경기가 끝난 줄 알고 트랙을 건너려다가 우발적인 사고로 죽었다고 보도했으나 허위였다.

6월 14일의 장례식에 5000명이 그를 추모했다. 이듬해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영국은 국내 소요를 막고자 투옥된 여권참정권자를 석방하고, 1918년에 재산가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여성참정권을 허락했다. 권리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서양이 여권을 존중한다는 말도 괜한 소리이다.

역사의 어느 순간인들 중요하지 않은 때가 있었으랴만, 우리는 한국의 미래 100년의 명운에 의회만 쳐다보고 있다. 국력이 세계 12위인데 정치만 후진이라고 말하지만 덧없는 소리이다. 그 나라 국회의원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과 정확히 일치한다. 여성의원은 더욱 그렇다.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문득 그를 생각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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