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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 폭락, 9·11 때보다 더 아팠다

중앙일보

2026.03.04 07:11 2026.03.04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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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코스피가 전날보다 698.37포인트(12.06%) 하락한 5093.54에 마감했다. 낙폭과 하락률 모두 역대 최고 기록이다. 코스닥도 1000선이 무너졌다.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종가와 함께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뉴스가 나오고 있다. 전민규 기자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가 한국 증시를 강타했다. 4일 코스피는 12.06% 수직 낙하하며 5000선을 위협했다. 이는 2001년 9·11 테러 당시(12.02%)를 넘어선 최대 하락률이다. 코스닥도 14% 폭락하면서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동시에 거래를 20분간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가 1년 7개월 만에 발동됐다. 이날 코스피 시총은 약 574조원이 증발했다. 전날과 합치면 951조원으로 올해 정부 예산(728조원)을 넘어섰다. 이틀 새 국내 증시(코스피+코스닥)에서 약 1068조원이 사라졌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698.37포인트(12.06%) 떨어진 5093.54에 거래를 마쳤다. 기관투자가가 홀로 5888억원을 순매도했고, 개인(797억원)과 외국인(2377억원)은 3147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전날 개인 순매수액은 5조8034억원이었다. 공포 심리에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은 것이다.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 변동성 지수(VKOSPI)는 전날보다 27.61% 오른 80.37에 장을 마쳤다. 역대 최고다.

중동 사태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로 인한 유가 급등 우려가 증시에 직접적인 충격을 줬다. 하지만 증권가에선 역대 최대 추락은 “비이성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일본 닛케이지수(-3.61%), 홍콩 항셍(-2.01%), 대만 자취안(-4.35%) 중국 상하이종합(-0.98%) 등 다른 아시아 증시와 비교해도 유독 낙폭이 컸다.

코스피는 최근까지 올해 세계 주요 지수 가운데 상승률 1위를 기록한 만큼, 중동발 충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평가도 많다. 중동사태가 불거진 이후 이틀간 코스피 하락률은 세계 1위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현재는 이란 사태로 급락하지만, 이게 아니었어도 3~5월은 조정에 취약한 상황이었다”며 “지금만큼 빠르게 조정받았던 닷컴 버블이나 3저 호황 때를 보면 대체로 조정폭은 15~23%였다”고 말했다.

전쟁 이후 크게 뛴 원-달러 환율도 악재였다. 전날 역외 야간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약 17년 만에 1500원을 넘기도 했다. 이민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가 200일 이동평균선(98.4)을 넘어 99를 기록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리스크”라며 “달러 강세는 외국인에게 환차익 기회를 제공하고, 특히 코스피의 (지난 2월) 20% 가까이 오른 단기 수익률은 가장 먼저 차익 실현의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닛케이 -3.6% 항셍 -2% “한국, 아시아 대비 비이성적 하락”

전쟁 이후 달러 강세 속에 외국인의 현금 확보 욕구가 강해지면서, 그동안 수익률이 가장 좋았던 한국 주식에서 돈을 먼저 뺐다는 것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외국인도 바깥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전 세계에서 유동성과 환금성이 가장 좋은 한국 시장에서 현금화하려는 전략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쏠림 현상도 낙폭을 키운 배경으로 지적된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3일 외국인 순매도액 약 5조1000억원 중 반도체 업종 비율이 84%(4조3000억원)였다”며 “가장 유동성이 높은 자산부터 매도한 결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코스피가 30% 이상 하락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왔다. 대신증권은 보고서를 내고 “1개월 이내 상황이 진정될 것으로 예상해 막연한 공포심리에 사로잡히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사태가 1년 이상 장기화될 경우 코스피가 30% 이상 조정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역대 최대 규모인 ‘빚투(빚내서 투자)’도 낙폭을 키울 수 있는 변수다. 이날 일부 증권사는 장중 급락한 주식에 대한 추가 증거금을 요구했다. 증권사들은 투자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주가가 매수가 대비 일정 비율 이상 하락하면 추가 증거금을 요구한다. 만약 투자자가 정해진 기간에 이를 납부하지 않으면 다음 날 바로 강제 매도(반대 매매)가 일어나고, 주가가 연쇄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일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32조8040억원을 넘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조정 기간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최근 사례를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와 유사한 공급망 교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다만 그때보다는 유가가 올라가는 속도가 완만하고, 인플레이션 압박이 2022년보다 낮은 만큼 당시보다 완만한 조정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서윤([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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