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중의원 선거 압승은 일본 외교정책과 아시아 역학 관계에 앞으로 큰 변수가 될 것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미국에서 벗어나 미·중 사이에서 독자 노선을 개척할 수 있다는 환상으로 유럽인들을 자극하고 있는 이때, 다카이치는 오히려 미·일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작금의 아시아 지정학 구도에 맞는 선택이며, 사실 유럽에도 더 유효한 비전이기도 하다.
이념보다 국익, ‘아베의 길’ 계승
공고한 미·일 동맹으로 중국 견제
한·일 협력은 대미 영향력 높여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다카이치 총리는 위태로웠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중국의 경제·외교적 압박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국민은 중국에 맞서는 다카이치에 열광했다. 새벽에 공무원들에게 전화해 ‘괴롭힌다’는 기사에 대해 총리가 공무원 조직의 기강을 제대로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다카이치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선정했다. 필자는 8세기 일본의 겐쇼 천황 이후 가장 강력한 일본 여성 지도자라고 평가해왔다.
그렇다면 다카이치는 앞으로 어떤 행보를 할까. 한·미 일각에서는 다카이치가 일본을 우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과장된 측면이 있다. 다카이치가 자민당 내 극우세력 출신인 것은 맞지만, 필자가 다카이치를 처음 만났던 1989년 그녀는 당시 가장 진보적인 민주당 의원 중 한 명이었던 패트리샤 슈뢰더 미 하원의원실의 인턴으로 근무 중이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멘토인 아베 신조 전 총리처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아베처럼 다카이치도 총리가 된 후 신사를 참배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국력과 위상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카니 총리가 대미 의존을 줄이려고 할 때 다카이치는 오히려 미국에 한 발 더 다가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이치를 ‘동지’로 치켜세운 것도 한몫 했지만,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다카이치의 판단이 컸다. 일본 국민도 지지하고 있다. 미국을 신뢰하는 일본인은 22%에 불과하지만, 미·일 동맹에 대한 지지는 92%다. 이제 다카이치는 일본의 이익을 위해 미국의 힘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이를 위해 기술 파트너이자 투자자,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의 보루로서 일본을 미국에 필수적인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던 아베의 전략을 계승할 것이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과 동맹 경시 태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미·일 동맹에 확고한 이유는 흥미롭다. 트럼프가 4월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대만을 ‘팔아넘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다카이치는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카이치 정부는 여전히 미·일 동맹에 대한 굳건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필자가 볼 때 미국 국민과 의회가 일본과 아시아 동맹국에 대한 확고한 연대 의식을 갖고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또 중국·대만·북한 문제에서 미국이 설령 오락가락 정책을 펼치더라도 결국 동맹국들과 함께 올바른 길을 찾아갔던 역사적 사례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다카이치는 트럼프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것이며 이는 한국에도 이득이다. 다카이치와 이재명 대통령의 깜짝 드럼 합주는 한·일 관계와 대미 영향력 측면에서 좋은 징조다. 과거 한·일 관계는 한국의 진보와 일본의 보수에 의해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한국 진보진영에 좌지우지되지 않을 것이며, 다카이치도 일본 보수진영에서 자유롭다. 강경 반공주의자였던 리처드 닉슨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아 “오직 닉슨만이 중국에 갈 수 있다”는 명언을 남겼던 것처럼, 두 정상의 이념적 차이로 인해 양국 관계는 역설적으로 안정성을 확보했다.
다카이치의 대 트럼프 정책은 나토(NATO)에도 본보기가 된다.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포스트 아메리카’ 비전은 그 토대가 미약하다. 현실은 미국이 여전히 나토 방위비 지출에서 70%를 부담하고 있다. 다카이치는 나토를 중요하게 본다. 아베도 트럼프 1기 대혼란 시기에 주요 7개국(G7)을 결속시키고 미-유럽, 미-아시아 안보 협력을 강화했다. 다만, 한국이 G7 회원국이 아니어서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