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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시시각각] 대통령이 레드팀을 좋아한다면

중앙일보

2026.03.04 07:20 2026.03.0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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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논설위원
“제가 레드팀 이런 거 좋아해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기자회견에서 이혜훈 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투기 의혹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면서 한 말이다. 그는 “한쪽 얘기만 듣고 판단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며 레드팀의 효능을 강조했다. 보수 진영의 장관 후보자를 고른 것도 레드팀 역할을 바란 것이었다. 결국 인사 실패로 끝나 ‘탕평 쇼’라는 비난까지 받았지만, “반대쪽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는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진심은 각인됐다.

레드팀 효능 강조해 온 이 대통령
거부 아닌 견제와 균형 원리 살려
입법 독주 점검하면 국익 아닌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6 신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레드팀은 1960년대 미군의 모의전쟁 훈련에서 나온 용어다. 아군을 블루팀, 가상의 적군을 레드팀으로 구분해 훈련하며 약점을 찾던 것이 동질적 집단이 빠질 수 있는 오류를 발견하는 방법론으로 자리 잡았다. 이 대통령은 부처 업무보고 때도 ‘레드팀 본능’을 드러낸다. 보고 내용의 허점을 파고들어 “그래서 어쩌라고” 등의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기도 한다. 아군에 회초리를 드는 모습이 60%대 국정 지지율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그 좋아하는 레드팀 역할을 당·청 관계에선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된 순간부터 입법부와 삼권분립의 관계가 되는 헌법적 경계선이 근본적인 이유겠지만, 친명계와 친청계의 알력이 커지면서 대통령의 메시지가 과잉 또는 축소 전달되는 혼선이 잦았다.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형 리더이자 꼼꼼한 법률가인 이 대통령의 눈에 차지 않았을 입법 과정과 결과물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민주당이 대통령의 형사재판을 임기 중 자동 중지하는 법안을 ‘국정안정법’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했다가 철회한 것도 그런 사례다. 과잉 충성이라는 비난 여론에 대통령실은 “논란만 있고 실익이 없다”고 제동을 걸었다. 검찰 개혁 법안은 공소청의 보완수사권 존치 문제가 당·청 간에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친명계가 추진한 공소 취소 모임은 “미친 짓”(유시민 작가)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어제 이 대통령은 SNS에 “수사·기소권 조작은 살인보다 나쁜 짓”이라며 직접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28일 국회서 대법관을 대폭 늘리는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투표를 마친 후 침묵 시위를 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앞을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말 국회를 통과한 ‘사법 3법’은 어떨까. 법 왜곡죄(형법 개정안), 재판소원제(헌법재판소법 개정안),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위헌적 독소 조항의 문제점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은 법 왜곡죄를 “K법치의 수치”라고도 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지만, 당·청 간 조율 속에 힘겹게 통과시킨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하는 건 기존의 정치공학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지점에서 이 대통령의 레드팀 본능에 호소하고 싶다. 우선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부터 팩트체크해 주길 바란다. 법제사법위원회가 사법 3법에 할애한 논의 시간이 법안당 평균 5시간 남짓이라고 한다. 야당에선 “생선을 짓이겨 어묵을 만드는 것 같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레드팀이었다면 용인하지 않았을 과정과 결과가 있는지 따져봐야 할 상황이다. ‘초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을 감당하기 힘든 새로운 사법 시스템 속으로 내던지는 일까지 벌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야당 주장에 굴복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일랑 접어두기 바란다. 헌정 질서를 파괴한 망상적 계엄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채로 “사법 파괴 악법”을 외치는 국민의힘 주장은 유체이탈 화법일 뿐이다. 그것보다 이 대통령이 사법 3법의 최대 수혜자로 의심받는 상황을 레드팀 역할로 떨쳐내는 게 우선이다.

거부권의 헌법상 명칭은 재의요구권이다. 정치 갈등의 산물이었기에 거부권이 더 익숙한 표현이 됐지만, 대통령이 이의를 달아 국회에서 재논의하게 하는 과정은 견제와 균형의 헌법 원리가 반영된 대승적 가치가 녹아 있다. 이 대통령이 사법 3법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건 당장의 당·청 관계엔 불편한 일이 되겠지만, 국민과 국익을 지킨 레드팀의 업적으로 헌정사에 기록될 수도 있다.





김승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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