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벌써?”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지난해 4월 29일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가 이틀 후인 5월 1일 내려진다고 예고했다. 고법 무죄 선고 후 사건이 대법원으로 올라온 지 34일, 전원합의체 회부 후로는 9일 만이었으니 대단히 이례적인 광속(光速) 재판임엔 틀림이 없다. 순간 “대선 전에 무죄 확정을 내려주려는 것이구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재명 후보의 당선에 대비해 헌법 84조, 즉 대통령에 대한 임기 중 형사소추 면제에 재판도 포함되는지의 논란을 사전에 깔끔하게 정리하려는 대법원의 심려란 생각도 했다. 필자뿐 아니라 다수의 예상이 그랬다. 민주당 의원들은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그때 만난 의원은 “대권가도의 마지막 걸림돌이 해소됐다”고도 했다.
“법·양심 따라 재판”, 헌법에 명기
주관적 양심의 과잉도 문제지만
외압이 양심을 옥죄면 더 큰 문제
선출권력의 입법만능주의 발상
“뭐라고?” 취재기자의 전화 보고를 받던 사회부 데스크가 소리치던 기억이 난다. 판결 결과는 다수의 예상을 깨는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이었다. 민주당은 그제야 판결의 신속함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지금 말하려는 건 판결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민주당이 대법원 판결의 신속함을 내란동조의 정황증거로 규정하고 몰아가는 행동력과, 역시 광속에 가까왔던 태세전환 속도다. “물리적으로 그 짧은 시간에 대법관들이 사건 기록을 읽었을 리 없다. 열람 기록을 컴퓨터 로그 기록으로 확인하겠다”는 초법적 발언이 태연하게 나왔다. 판결이 예고됐을 때 “숙고할 시간이 부족하지 않느냐”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면 필자는 그분을 대단히 존경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진 건 불편하지만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가장 큰 불신은 재판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고, 때로는 유무죄가 엇갈린다는 점에 있다.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고 파장이 큰 정치인 관련 사건일수록 그런 경향이 느껴진다. 오죽하면 재판부의 성향을 살피고, 심지어 고향까지 따지게 됐을까.
역설적이지만 양심의 범람이 사법부 불신의 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는 건 만인의 상식이다. 그런데 양심이란 건 한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최소한의 도덕률이란 공통분모를 제외하면 경험이나 가치관·종교·이념·정치성향 등에 따라 각자 다를 수 있다. 문언화된 법은 객관적 실체가 있지만 양심은 내밀한 영역에 갇혀 있어 실체 확인이 어렵다. 그래서 법보다 양심을 우선하면 법관마다 다른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특히 진영 대립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법관의 양심이 정치적 신념과 동일시되면 판결이 오히려 사회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헌법학 권위자들의 해석도 법관의 주관적·개인적 양심은 최대한 자제되어야 한다는 쪽이다. (김철수 『헌법학 신론』, 정종섭 『헌법학 원론』)
그렇다면 왜 헌법 103조는 ‘양심’을 적시하고 있을까.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양심’과 ‘독립’을 한 문장에 배치한 조문의 구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부의 힘에서 벗어나 법관의 양심을 걸고 오로지 자주적인 판단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법 왜곡죄가 문제되는 부분이 바로 이 조문에 있다. 판결을 잘못하면 처벌 받을 수 있다는 현실에서 모든 판사가 의연하게 판단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성인군자들만의 사회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판결의 잘잘못을 따지는 판단에 1차적으로는 수사기관이 개입하고, 그 과정에 정치권력의 힘이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법관의 양심이 설 공간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법의 왜곡을 막자는 조항이 오히려 독립적인 판결의 준거가 되어야 할 양심의 왜곡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법 왜곡죄 논의의 태동에서부터 국회 문턱을 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의구심은 더욱 깊어진다. 지귀연 판사가 구속기한 산정 기준을 엄격하게 해석해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석방하자 법 왜곡죄 도입 주장이 민주당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지 판사가 반대의 결정을 내렸더라면 논의가 그렇게 급물살을 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덕수 전 총리에게 구형보다 높은 형이 선고되자 “사필귀정”이라며 반색하던 의원들이 김건희 여사의 혐의 중 다수에 무죄가 선고되자 “그래서 사법개혁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삼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이 선고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법 왜곡죄가 과연 법관의 양심을 온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까.
법관이 양심을 과잉 표출하는 것도 문제지만, 법관의 양심을 옥죄고 왜곡하는 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새 법을 만들고 없던 죄목을 신설해 사법부를 선출권력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는 건 입법만능주의적 발상에 가깝다. “나라가 부패할수록 그에 비례해 법률은 늘어난다” 고 했다. 이미 2000년 전 고대 로마의 타키투스가 남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