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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속에서 찌들어간다…27년째 갇혀있는 559세 국보 논란

중앙일보

2026.03.04 12:00 2026.03.04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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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내 원각사지 십층석탑 유리 보호각 안에서 시민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보호각 내부 공개는 27년 만에 처음으로 15일까지 한시적으로 진행된다. 이지영 기자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내 국보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이하 원각사지 탑)을 둘러싼 유리 보호각의 문이 열렸다. 선착순 예약에 성공한 10명의 관람객이 보호각 안으로 들어가 ‘맨눈’으로 석탑을 마주했다. 1999년 유리 보호각이 설치된 이래 시민들의 내부 관람이 허용된 건 27년 만에 처음이다.

해설사로 나선 성균관대 동아리 ‘역사좀아일’ 학생들의 설명에 따라 관람객들은 탑의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펴봤다. 왕권 강화를 의미하는 오족룡, 인도로 경전을 찾아 떠나는 삼장법사 일행 등 그간 두꺼운 유리와 빛 반사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조각과 문양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관람객 이성남(69)씨는 “안에 들어와서 보니 훨씬 생동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유리각 안은 바깥보다 훨씬 따뜻했다. 한여름엔 유리각 안 온도가 60도까지 올라간다는 종로구청 관계자의 말이 실감났다. 군데군데 석탑이 부스러진 흔적은 27년 동안 비를 맞지 못해 너무 건조해진 탓도 있어 보였다.

원각사지 탑의 관리를 맡고 있는 종로구청은 이날부터 15일까지 하루 30명씩 총 270명에게 보호각 내부를 공개한다. 지난달 23일 관람 예약을 시작하자 7분 만에 마감됐을 정도로 호응이 컸다. 구청 문화유산과의 최인숙 과장은 “현재 유리 보호각 개선을 위해 연구용역 중인데,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국보를 가까이서 향유할 수 있게 기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탑골공원 내 원각사지 탑. 1999년 이후 유리 보호각 안에서 관리 중이다. [사진 종로구]
국보2호인 원각사지 탑은 화강암이 주류인 우리나라 석탑에서 드물게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엄밀하게는 석회암과 대리암의 중간 성질이라 서양 대리석보다 산성에 취약한 편이라고 한다. 조선 세조 13년(1467) 건립된 석탑은 근대 도시화와 더불어 산성비와 조류 배설물 등에 지속 노출되면서 심한 오염·부식을 보였다. 결국 1999년 두께 21.5㎜의 고강도 유리를 장착한 철골 보호각이 사면을 에워싸게 됐다. “투명 유리라 관람에 문제없다”고 했지만 초기부터 미관상 어울리지 않는데다 빛 반사로 인해 바깥에서 제대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6년 국립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에선 보호각 상부구조물의 결로현상이 관측됐고 습기와 통풍 불량 등으로 인한 오염물질 침전 등이 보고됐다. “보호각이 아니라 훼방각”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탑의 실내 이전 가능성에 대해선 일축한다. 고려시대 ‘경천사지 십층석탑’(국보)이나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이 해체·보존처리 후에 실내로 옮겨진 건 예외적이라면서다. 북한 개성 땅에 있던 경천사지 탑과 강원도 원주에 있던 지광국사탑은 구한말~일제강점기에 각각 고향에서 반출돼 부재(部材, 건축물의 뼈대가 되는 요소) 상태로 이리저리 옮겨지는 수난을 겪었다. 대리석으로 이뤄진 경천사지 탑은 원각사지 탑의 보호각 문제점을 의식해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이전 때 아예 실내(상설전시관 로비)로 들어갔다. 화강암 재질이지만 내부 부식이 심했던 지광국사탑도 2024년 원주로 귀향하면서 원래 터 인근의 전용 전시관 안에서 보호되고 있다. 반면 원각사지 탑은 건립 이래 559년 간 제자리를 지켜왔고 건축유산 특성상 장소성의 가치가 지켜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참에 밀폐형 보호각을 없애고 개방형 관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엄기표 단국대 교수(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 전문위원)는 “문화재 보호에 최선을 다하되 영원불변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면서 “야외 석조유산을 제대로 관람도 못하게 만드는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꼬집었다. 반면 풍화·오염에 따른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이태종 학예사는 “원각사지 탑은 어느 석탑보다 정교하고 다채로운 도상 표면이 특징인데 비바람에 깎여나간다면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종로구는 2021년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보호각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보호각 형태 및 관람환경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구청 측은 “이번 공개관람 성과를 보면서 국가유산청과 향후 개선 방향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보호각이 설치된지 오랜 시간이 지난만큼 전문가 등의 논의를 거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조선 세조 13년(1467) 원각사가 지어질 당시 조성돼 연산군 때 절이 폐사한 후에도 제자리를 지켜 왔다. 높이 약 12m로 고려시대의 경천사지 십층석탑(높이 13.5m, 국보)과 쌍둥이 같은 모양새다.





강혜란.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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