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중한 산줄기가 도심을 받치고 있는 땅, 부산은 ‘항구 도시’이기 전에 ‘산의 도시’다. 도시 면적의 47%가량이 산지다. 부산에 첫 국립공원이 탄생했다. 지난 3일 금정산이 전국 24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금정산(801.5m) 일대와 부산 최대 철쭉 군락을 품은 백양산(642m) 자락이 금정산 국립공원에 포함됐다. 국내 최장 규모의 산성과 영남 3대 사찰로 꼽히는 범어사까지 다양한 자연·역사·문화 자원을 거느렸다. 국립공원이 된 금정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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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숨구멍 금정산
부산 사람은 금정산을 ‘부산의 진산이자 허파’라고 부른다. 계곡과 습지를 두루 품은 거대한 숲인 동시에 친숙한 동네 뒷산이다. 금정산과 백양산을 잇는 금백종주(편도 28㎞, 약 12시간)처럼 강도 높은 산행 코스가 있는가 하면, 가볍게 산책길도 여럿이다.
무엇보다 도심과 가깝다. 금정산을 가운데 두고 부산 지하철 1, 2호선이 ‘11자’로 뻗어 있어 ‘지하철+버스’ 조합으로 주요 들머리에 닿을 수 있다.
지난 26일 금정산에 올랐다. 범어사를 들머리 삼아 금정산성 북문을 거쳐 최고봉 고당봉에 오르는 코스(편도 3.6㎞, 2시간)로, 200개가 넘는다는 산행 코스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길이다.
금정산을 오르기 전에 알아둘 것. 국립공원이 되면서 꽤 많은 규칙이 달라졌다. 금정산에는 야경 보러 밤에 오르거나 반려견과 함께 산을 찾는 이가 적지 않았는데, 이제는 모두 허용되지 않는다. 취사·음주·야영도 당연히 금지다.
범어사 경내엔 이미 봄이 와 있었다. 동백은 진즉 물러나고, 매화가 여기저기서 봄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일주문 역할을 하는 조계문(보물) 앞 홍매화가 유난히 붉었다. 마치 봄으로 드는 문 같았다.
‘돌 바다’로 악명 높은 범어사 뒤편 너덜지대를 지나 금정산성 안으로 들었다. 금정산성은 숙종 29년(1703) 축성한 국내 최장 산성이다. 처음엔 둘레가 18.8㎞나 됐으나 지금은 약 4㎞ 구간만 남았다. 북문 옆 벤치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데, 수풀에서 개골개골 산개구리 울음이 들려왔다. 유성봉 국립공원사무소 계장은 “습지가 많아 다양한 동식물이 산다”며 “최근엔 멸종위기종 담비 가족도 목격됐다”고 귀띔했다.
마침내 고당봉 정상. 낙동강 물줄기와 부산 시내, 산성의 등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금정산(金井山)이라는 산 이름은 고당봉 아래에 돌출한 거대한 바위, 이른바 ‘금샘’에서 비롯됐다. “마르지 않는 금빛 샘이 산머루 바위에 있다”는 기록이 조선 시대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남아 있다. 전설처럼 바위 정수리에 물이 괸 아담한 샘이 있었다.
금정산을 더 쉽게 맛보는 길도 있다. 금정산 동쪽 자락 금강공원에서 케이블카(왕복 어른 1만1000원)를 타면 7분 만에 산허리에 닿는다. 상부 정류장에서 완만한 흙길을 따라 20여 분 걸으면 금정산성 남문으로 통한다. 급경사도, 바윗길도 없다. 어르신이나 어린이도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다.
금정산 케이블카는 부산의 오랜 명물이다. 1966년 4월 개통해 60년간 관광객을 실어 날랐다. 투명한 바닥을 갖춘 최신식 곤돌라는 아니다. 40명씩 싣고 다니는 옛날식 케이블카다. 투박한 외관과 알록달록한 색감이 되레 더 낭만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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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엔 막걸리 한잔
금정산 국립공원 지도를 보자. 능선 한가운데가 구멍 난 듯 비어 있는데, 그 빈칸이 먹거리촌으로 유명한 산성마을(금성동)이다. 국립공원 밖이지만, 금정산을 찾는다면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산성마을은 예부터 금정산 여행자의 쉼터였다. 흑염소 불고기와 오리 백숙 식당이 50여 곳에 이른다.
이 마을의 간판은 ‘금정산성 막걸리’다. 마을에서 직접 누룩을 빚어 술을 담가온 역사가 500년 세월을 헤아린다. 1960년대 전국적인 밀주 단속으로 침체를 겪다가 79년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민속주 1호’에 등록되며 전국구 민속주가 됐다.
이른바 ‘족압식’으로 빚은 누룩이 막걸리 맛의 핵심이다. 작업장을 들여다보니 ‘몸빼’와 고무신 차림의 할머니들이 두 발로 꾹꾹 눌러가며 밀 반죽을 하고 있었다. 숙성과 건조까지, 누룩 하나를 완성하는 데 40일이 걸린단다. 전덕순(87) 할머니는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해 평생 두 발로 누룩을 빚었다”고 말했다.
유청길(68) 대표(막걸리 분야 1호 식품명인)는 “생쌀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도는 것처럼, 누룩도 제대로 반죽하면 풍미가 배가 된다”고 말했다.
산성마을의 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오리 숯불구이와 막걸리를 주문했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신맛이 강해 호불호가 갈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웬걸, 산행 후 입가심이라 그런지, 막걸리가 입에 짝짝 달라붙었다. 식당에선 막걸리 한 병이 5000원인데, 마을 초입 양조장에선 2300원에 살 수 있다.
금정산 국립공원은 낙동정맥 끝자락의 백양산도 함께 품고 있다. 금정산이 단풍과 억새가 화려한 가을 산이라면, 백양산은 알록달록한 봄 산이다. 정상 아래 애진봉(642m) 일대가 부산 최대 철쭉 군락지로 꼽힌다. 무려 23만 그루의 철쭉이 심겨 있다. 4월 말이면 60만㎡(약 18만 평) 능선이 통째로 분홍빛으로 물든다. 아직은 때가 일렀지만, 가지 끝마다 꽃봉오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