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서 ‘쿵’하고 무거운 굉음이 울렸는데, 주변 공기가 짓눌린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있던 야외 수영장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모두 멈춰있는 걸 보고 ‘아 공습이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찔해졌어요. "
지난 1일(현지시간) 이란의 보복 공습을 받은 아랍에미리트(UAE)를 탈출해 최근 방글라데시로 대피한 한국인 직장인 이모(30대·여)씨는 지난 4일 오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습 당시의 상황을 이같이 전했다. 이씨는 “야자수 모양 인공섬으로 유명한 팜주메이라가 바로 인근이었는데, 오후 7시쯤 그곳의 고급호텔에도 미사일 파편이 떨어졌다”며 “동네 마트로 달려가 비상식량을 사온 뒤 지하 주차장에 있는 차 안에 들어가 새벽 2~3시까지 벌벌 떨었다”고 말했다. 그는 “잠깐 몇 시간 잠잠해지나 싶어서 숙소에 올라왔는데, 오전에 다시 공습이 시작되는 걸 보고 정말 탈출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탈출 정보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얻었다고 했다. 이씨는 “한인회 카톡방, 탈출방 같은 SNS에서 교통수단 등 탈출 방법을 묻고 서로 정보를 공유했다”며 “이곳서 한 택시 업체를 알게 됐는데, 두바이서 오만 무스카트까지 165만원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용을 줄이고 싶어서 2일 오전 6시부터 같이 택시를 탈 사람을 구했지만 찾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두바이를 탈출하고 싶어서 결국 혼자 165만원을 다 내고 이날 오전 11시에 택시를 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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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검문소 아수라장
육상으로 국경을 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국경 검문소에 갑자기 많은 사람이 몰리자 국경을 넘으려는 여행객과 검문소 직원이 엉켜 아수라장이 됐다고 한다. 이씨는 “평소엔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곳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오후 1시쯤 검문소 문을 열고 들어가니 60~70명이 넘는 사람들로 안이 꽉 차 있었다”며 “대기표나 대기줄도 없고, 누가 먼저 왔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인데 직원은 무조건 기다리라고만 소리쳤다”고 말했다. 그는 “최대한 빨리 통과하려고 앞쪽에서 기웃거리면서 순서를 기다렸는데도, 국경을 통과하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고 덧붙였다.
오만 무스카트 공항서 출발하는 항공편은 택시에서 급하게 예약했다고 했다. 이씨는 “일단 중동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목적지와 관계없이 가장 빠른 항공편을 잡았는데, 그게 방글라데시 다카였다”며 “오후 7시쯤 공항에 도착해 오후 10시 비행기를 탔고, 다음날 오전 4시에 다카에 도착했다. 두바이 다카까지 총 17시간 걸려 중동에서 탈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소에 누리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됐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 안전망이 상당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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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프로축구 진출 이기제 선수도 입국 알려
이란 프로축구 리그에서 뛰던 한국 축구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 이기제(34) 선수도 지난 4일 귀국 소식을 알렸다. 이 선수는 이날 오후 10시쯤 SNS에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사진을 올리며 “한국에 무사히 잘 도착했습니다. 걱정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고 적었다. 이 선수와 이도희 이란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등 이란에서 체류하던 한국인 24명은 지난 2일 대사관이 빌린 버스를 타고 테헤란에서 투르크메니스탄으로 이동한 뒤 항공편으로 귀국했다.
중동 항공편 일부 노선이 운행을 재개하면서 현지에 체류하던 한국인 일부가 순차적으로 귀국할 예정이다. 하나투어는 두바이 패키지여행 관광객 40명이 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두투어 관광객 39명도 이날 오후 늦게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다. 정부는 한국인 귀국을 돕기 위해 전세기와 군수송기 등을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어떤 것이 가장 신속하교 효과적일지 실무적으로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