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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쿠르드 빌려 이란 흔드나…내부 폭발 유도 '게임체인저'

중앙일보

2026.03.04 21:54 2026.03.0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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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내 아이젠하워 행정관청에서 열린 에너지 관련 라운드테이블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라크 쿠르드족 전투부대 수백~수천명이 이란 국경을 넘어 지상전에 들어갔다는 외신 보도가 4일(현지시간) 나왔다. 전쟁 장기화 우려 등으로 지상군 투입을 꺼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정권을 내부에서 흔드는 데 쿠르드족 손을 빌리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쿠르드족의 개입 범위가 미국의 이번 ‘장대한 분노’ 작전의 향방을 가를 중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 폭스뉴스는 이날 쿠르드족 전투원 수천 명이 이라크에서 이란으로 국경을 넘어 지상 공격을 시작했다고 복수의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포스트는 “수백명의 쿠르드족 전투원들이 국경을 넘어 이란으로 들어갔다”고 전했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쿠르드족 전투원 중 상당수는 여러 해 동안 이라크에 거주에 온 이란 쿠르드족이며, 이번 공격의 일환으로 이란 북서부로 진입하고 있다.



“美가 지원 요청…지상작전 관련 접촉”

이라크 북부 반(半)자치구역 쿠르디스탄에서 활동하는 쿠르디스탄자유당(PAK) 관계자는 이날 “미국이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지상 작전과 관련해 미 당국과 접촉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이스라엘 역시 쿠르드족과 손잡았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정부 당국자는 “우리는 쿠르드 민병대를 지원하고 있다”며 민병대가 이란 내 일부 지역을 장악해 더 광범위한 봉기를 유도하는 것이 지원의 목표라고 말했다.

앞서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미군이 이란 내 봉기 세력에 무기를 제공하진 않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다른 주체들이 무엇을 하는지 인지하고 있지만 우리의 목표는 그게 중심이 아니다”고 말했다. 중앙정보국(CIA) 등 다른 미 정부 기관의 쿠르드 관여 가능성을 시사하는 말로 풀이된다.



백악관 “트럼프, 쿠르드 지도자들과 대화”

캐롤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미 백악관은 쿠르드족 접촉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작전 관여 여부는 부인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미국이 이란 내 민중 봉기 촉발을 위해 쿠르드족 군대에 무기 공급을 검토 중’이라는 일부 보도의 사실 여부에 대한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라크 북부에 위치한 우리 기지와 관련해 쿠르드 지도자들과 대화했다”며 “하지만 대통령이 그런 계획에 동의했다는 보도는 완전히 거짓”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접촉한 인사는 쿠르드족 핵심 지도자 마수드 바르자니와 바펠 탈라바니라고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 두 명에게 이라크 주둔 이란계 쿠르드족 전투요원들이 이란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NYT는 또 “CIA는 이란 체제를 흔들기 위해 이번 전쟁 이전부터 비밀리에 쿠르드족 세력에 소형 무기를 제공해 왔다”고 보도했다.



NYT “CIA, 쿠르드에 소형무기 제공”

다만 쿠르드족의 이란 지상전 전개를 부인하는 얘기도 나온다. 이라크 쿠르디스탄 자치구 총리실 부비서실장은 “국경을 넘은 이라크 쿠르드족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부인했다. NYT 역시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은 쿠르드족을 이란으로 보낼지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며 “이 결정은 이스라엘이나 미국이 아니라 쿠르드 지도부가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NYT는 그러면서도 “쿠르드 세력의 이란 침입이나 반란을 지원하기 위한 미국의 어떤 시도도 이번 전쟁에서 놀라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오스만 제국 해체 이후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한 인구 3000만여 명의 쿠르드족은 이란·이라크·튀르키예·시리아 등 중동 4개국 접경지대에 흩어져 거주하며 자치와 독립을 끊임없이 추구해 온 민족이다. 대부분이 수니파 무슬림이지만, 다양한 정치·종교·언어·문화적 배경이 혼재한다. 이라크와 시리아 내전 때는 미군의 핵심 동맹으로 이슬람국가(IS) 격퇴에 상당한 공헌을 하는 등 전투력을 검증받기도 했다. 이란계 쿠르드족은 오랜 기간 정부의 탄압을 받아 반(反)이란 세력의 핵심으로 꼽힌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트럼프, 이란 내 ‘자생적 폭발력’ 기대

그런 쿠르드족의 이란 지상전 개시는 이번 전쟁의 판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 변수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쿠르드족에 기대하는 역할은 대규모 미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도 이란 내부의 ‘자생적 폭발력’을 유도하는 것이다.

쿠르드 세력이 무장봉기를 본격화할 경우 이란군은 병력을 분산 배치할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응하느라 핵심 시설 방어에 집중하고 있는 이란으로선 또 하나의 전선을 맞는 셈이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정규군이 서부 전선에 묶이면, 수도 테헤란과 중부 핵심 도시 방어는 상대적으로 취약해진다.



이란 내 반정부 시위 본격화 가능성

3일(현지시간)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구 아르빌 동부 코이신자크에서 이란 쿠르드민주당(KDPI) 대원이 이란의 공격으로 피해를 당한 캠프를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쿠르드 무장세력이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 등의 지원을 받아 이란 내부로 침투해 보안시설을 무력화할 경우 파급력은 훨씬 커질 수 있다. 통신·전력·군수시설이 교란되면 주요 도시 시민들이 본격적인 반정부 시위에 나설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부에서의 군사적 타격과 내부에서의 동요·불안이 맞물릴 경우 이란 정권은 중심부터 흔들릴 수 있다. 쿠르드족이 단독으로 이란 정권을 전복할 군사적 역량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정권 심장부를 마비시키고 내부 혼란을 극대화하는 ‘게임체인저’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충분하다는 평가다.

쿠르드와 외부 세력의 결탁을 원하지 않는 이란은 쿠르드를 향해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 왔다. 이란은 지난 3일 이라크 내 쿠르드 반정부 세력 주요 정파가 참여한 통합체인 ‘쿠르디스탄 정치세력연합’ 본부를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어 4일에도 쿠르디스탄 본부를 미사일 3발로 타격했다.




김형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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