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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쿠르드족, 이란과 지상전 돌입…美 부추긴 ‘차도살인'?

중앙일보

2026.03.04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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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 민병대. AFP=연합뉴스
반(反)이란계 산악 민족인 쿠르드족이 이란을 향한 지상전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상군 투입을 주저하는 미국의 ‘대리전(proxy war)’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4일(현지시간) AP통신과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은 이라크 북부에 기반을 둔 쿠르드족 반군이 이란 국경을 넘어 지상전을 개시했다고 보도했다. 쿠르드족 반군 관계자들은 AP통신에 “미국이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란 측은 쿠르드족의 이란 공습 보도를 부인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공습 이후 쿠르드족 지도자들과 접촉했다고 밝혔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라크 북부에 있는 우리 기지와 관련해 쿠르드 지도자들과 통화했다”고 말했다. 다만 통화가 미국이 쿠르드족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란 언론 보도에 대해선 “대통령이 그런 계획에 동의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미국이 지상군 투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쿠르드족을 끌어들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남의 칼을 빌려 적을 제거하는 일종의 ‘차도살인(借刀殺人)’ 전략이다. 3000만~4000만명으로 추산하는 쿠르드족은 세계 최대 규모 ‘나라 없는 민족’으로 불린다. 이슬람 수니파가 다수를 차지한다(이란은 시아파 다수). 오랫동안 쿠르드어와 고유 문화를 지켜왔지만 독립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이란·튀르키예·이라크·시리아 등에 퍼져 살았다. 특히 쿠르드족을 강경 진압해 온 이란 정부와 지속해서 갈등을 겪었다.

서구 강대국과 중동 국가는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쿠르드족을 끊임없이 이용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쿠르드족에게 “오스만튀르크와 맞서 싸우면 독립 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승전국은 1923년 로잔 협상을 통해 약속을 깨뜨렸다.

2003년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했을 당시도 이라크 내 쿠르드족의 도움을 받았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이라크는 물론 이란과 튀르키예 등의 반발로 독립에 실패했다. 2010년대 수니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중동에서 맹위를 떨치자 쿠르드족은 미국과 서방을 도와 IS 격퇴에 앞장섰다.

하지만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쿠르드족을 다시 외면했다. 튀르키예가 시리아 북부 내 쿠르드족을 향한 군사 작전을 펼치기 직전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했다. 미군이 없는 상황에서 튀르키예의 공습으로 쿠르드족은 큰 피해를 봤다. 미국이 특정 시점마다 쿠르드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막상 독립 국가로 발전할 세력으로 성장하는 데 대해선 거리 두기를 한 셈이다.

CNN은 “파편화돼 단결하지 못하는 이란의 반정부 그룹 중 쿠르드족은 가장 잘 조직됐을 뿐 아니라 수천 명의 무장 병력도 갖고 있다”며 “쿠르드족 민병대는 상당한 전투 경험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란·이라크 내 쿠르드족이 이란과 전쟁에 가담할 경우 본격적인 지상전이 시작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기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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