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로 국제 유가가 출렁이자 국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단숨에 1800원을 돌파했다. “오늘이 제일 싸다”는 심리에 수요가 몰렸고, 이를 틈타 일부 주유소가 선제적으로 가격을 올린 탓이다. ‘이상 급등’에 정부는 가격 통제 검토 등 즉각 대응에 나섰다.
5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전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1834.32원으로 전날보다 리터(L)당 56.84원(3.2%) 올랐다. 2022년 8월 9일(1834.04원) 이후 약 3년 7개월 만에 최고치다. 서울은 거의 1900원(1889.07원)까지 근접했다. 경유 판매가격도 전국 기준 1830.33원으로 하루새 101.56원(5.9%) 급등했다.
미국ㆍ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직후 에너지 가격 불안이 커지면서 수요가 몰린 게 가격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이다. 4일에도 휘발유ㆍ경유는 하루 만에 각각 54원(3.1%), 94원(5.8%) 올랐다. 국내 휘발유 가격이 하루새 2% 넘게 오른 건 10년여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1일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1695.89원)에서 나흘 새 200원 가까이 올랐다. 같은 기간 경유도 200원 넘게 비싸졌다.
문제는 단기간 너무 가파르게 올랐다는 점이다. 국제 유가 변동이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통상 2∼3주가 걸린다. 정유사들이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주유소에 유통하기까지 시차가 있어서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상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양상이다. 3일 기준 국제 유가(브렌트유)는 배럴당 81.4 달러로 전일 대비 4.7% 상승했는데, 국내 유가 오름폭도 비슷한 모습이다.
시중에선 정유업계를 향해 “기름값을 내릴 땐 천천히 내리면서, 올리는 속도는 너무 빠른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정부도 칼을 빼들었다. 시행 전례가 없는 최고 가격 지정제까지 거론하며 정유ㆍ주유업계 압박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X(옛 트위터)를 통해 “중동 상황 등 국가적 위기 상황을 틈타 석유류 가격을 과도하게 올려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몰염치한 행위에 철처히 대응하겠다”며 “6일부터 범부처가 함께 현장 가격을 점검하고, 산업부가 유종별ㆍ지역별 합리적 수준의 최고가격 지정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석유사업법 23조에 따라 석유류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 정부가 최고 가격을 지정하겠다는 의미다. 정부 관계자는 “최고 가격 지정제를 시행할지, 시행 한다면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는 좀 더 검토해봐야 한다”며 “국내 유가가 과도하게 뛴 상황이니 일단 시장에 강력한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고, 향후 점검을 통해 대응 방안을 구체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부도 이날 정유ㆍ주유소 업계를 만나 가격 상승 자제를 적극 요청했다. 6일부터는 경찰청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소비자 신고가 많은 주유소 등을 대상으로 월 2000회 이상 강력한 특별기획 검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점매석ㆍ가격담합 등 불법 행위를 엄중히 제재한다는 방침이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국제 유가 상승에 편승한 시장 왜곡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장감시를 한층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도 이날 임시 국무회의에서 “유류 공급과 관련해 아직 객관적으로 심각한 차질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폭등했다고 한다. 아침 점심 저녁 가격이 다르고, L당 200원 가까이 올린 곳도 있다고 들었다”며 제재 방안을 주문했다.
주유소에 휘발유 등을 공급하는 정유사들은 난처한 표정이다. 개별 주유소의 소매 가격 결정 매커니즘에 정유사가 관여하긴 어렵다면서다.
실제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직영 주유소의 보통휘발유 평균 가격은 L당 1781.68원, 자영주유소는 1777.27원으로 집계됐다. 직영주유소는 지난 1일 대비 3.89% 오른 반면, 자영주유소는 4.85% 올라 가격 인상폭이 더 컸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가 제공하는) 공급가가 일부 오른 것은 맞지만, 주유소에서 향후 공급 부족 우려 때문에 재고를 적정하게 보유하려는 차원에서 가격을 올렸을 수 있다”며 “중동 사태 전에도 원유 가격이 오르고 있어, 휘발유값 상승은 어느 정도 예견됐지만 이 정도로 급격하게 오르는 상황은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는데 정유사들이 용감하게 공급가를 올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서 “정유사들이 사와야 하는 물량 가격도 올랐지만, 정부 눈치 보느라 시장 충격을 완화하려고 우리도 애쓰고 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