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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다고 놀라지 말아요

중앙일보

2026.03.0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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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 16세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서, 17세 첼리스트 이재리, 15세 첼리스트 김정아(왼쪽부터). 10대 현악기 연주자들이 각자의 음악 세계를 뚜렷하게 보여주며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 콩쿠르에 20·30대와 함께 출전해 입상하고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며 청중과 활발히 소통한다. [사진 WDR, 중앙포토, 거암아트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17)이 활을 들었을 때 오케스트라와 청중 모두 고요했다. 곧 이어진 현의 소리는 예리하고 단단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독일 쾰른 필하모니에서 열린 김서현의 쾰른 데뷔 무대. 이날 공연은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공연에는 쾰른 방송 교향악단(WDR 심포니 오케스트라),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 지휘자 안드리스 포가가 함께 했다. 브람스가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해 작곡한 협주곡에서 김서현의 존재감은 컸다. 중견 연주자인 뮐러 쇼트에 밀리지 않는 팽팽한 집중력, 또 두 현악기의 음색을 잘 섞어내는 실력이 돋보였다.

2010년대 출생한 알파 세대 현악기 연주자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국제 콩쿠르의 수상은 물론, 세계 무대에서 거침없이 활약한다. 독보적인 음악 세계로 온라인상에서는 이미 팬덤이 형성됐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사라 장, 첼리스트 장한나가 중심이던 1990년대가 재연될 조짐도 보인다.

10대 현악 연주자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어른들과 겨뤄 수상하는 일은 이제 흔하다. 김서현은 2023년 14세에 티보 바르가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했다. 26세까지 참가할 수 있는 대회였다. 그는 콩쿠르 우승 이후 악기 후원과 연주 기회를 얻었으며 현재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서(16) 또한 불과 15세에 국제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입상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10월 이탈리아의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에서 김현서는 3위 수상과 함께 청중상, 최연소 결선 진출자상까지 받았다. 이들에게 ‘최연소’는 평범한 별명과 같다. 김현서는 2024년에는 비오티 국제 콩쿠르에서도 최연소 2위 입상을 기록했다.

바이올린은 특히 일찍 시작해 빠르게 주목받는 분야다. 김현서는 4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했으며 11세에 금호영재콘서트로 정식 무대에 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영재 입학한 나이도 15세로 역대 최연소를 기록했다.

10대 연주자들은 또한 거침이 없다. ‘KBS 음악실’을 제작하는 클래식FM(93.1MHz)의 김경정 PD는 “요즘 10대 음악가들은 다르다”고 했다. “생방송 연주라고 해서 겁먹는 법이 없다. 한 달 정도만 시간을 주면 라이브에 맞는 연주곡목을 만들어오고, 처음 해보는 곡이라도 생방송 연주 제안에 오케이를 외친다.” 김서현과 첼리스트 이재리(17)가 함께 출연한 지난해 12월 방송은 청취율과 참여가 특히 높았다고 한다.

팬덤은 이미 있다. 이재리는 지난해 11월 윤이상 국제 콩쿠르 결선 무대 영상으로 화제가 됐다.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는 그의 왼손 한 손가락과 손톱이 피로 물든 장면이었다. 부상에는 개의치 않은 채 집중력으로 연주를 마친 이재리는 2위를 차지했다. 이미 쇤펠트 국제 현악 콩쿠르에서 최연소인 16세에 우승을 한 후였다.

10대 스타들의 탄생 뒤에는 좋은 스승, 음악적인 환경이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이강호(첼로) 교수는 “이제 생태계가 잘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선생이 많고, 20대 이상의 젊은 연주자들은 활발히 활동하며 본보기가 된다. 어린 연주자들은 서로 보고 배우는 일에 익숙하다. 이런 여러 요인이 10대 음악가들을 길러내고 있다.”

이달 26일부터 런던에서는 1위 상금 5만 유로(약 8500만원)의 ‘클래식 첼로 국제 콩쿠르’가 열린다. 40세 이하 첼리스트를 대상으로 한 이 콩쿠르에 한국의 15세 첼리스트 김정아가 참가한다. 지난해 말 영상 심사를 거쳐 선발된 전 세계 40인의 본선 진출자에 포함됐다. 김정아는 11세에 영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했던 첼리스트다. 당시 17세 미만의 전 세계 참가자들을 제치고 최고점을 받은 초등학생으로 관심을 모았다.

이처럼 국제 콩쿠르에서 어른들을 이기고, 도전적인 연주를 마다하지 않으며 청중과 소통하는 새로운 스타들이 성장하고 있다. 10대 현악 유망주들의 무대는 올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김서현은 쾰른 방송 교향악단과 함께 이달 11일까지 부산·진주·구미·부천·서울에서 연주한다. 이재리는 22일 서울 신사동의 거암아트홀에서 독주회를 열고, 김현서는 7월 2일 서울 예술의전당의 차세대 유망주를 위한 ‘더넥스트시리즈’에서 연주할 예정이다.

다음 달 21일 개막하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올해 주제는 ‘모차르트와 영재들’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재 중 하나인 모차르트의 탄생 27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그램으로, 첼리스트 김정아를 비롯해 12~16세의 음악가 7명을 선보인다. 이들이 출연하는 무대는 5월 2일의 ‘가족 음악회’. 유튜브 영상 조회 수 1억6000만 뷰를 돌파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연아(12)도 이날 공연에 함께 한다.




김호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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