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고조되면 투자 수요는 금으로 몰린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혀서다. 하지만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금값은 주춤한 반면, 비트코인은 그간 하락세를 접고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암호화폐가 ‘대체 안전자산’의 기능을 했다는 평가가 다시 나온다. 월가에선 암호화폐를 둘러싼 ‘디지털 금’ 논쟁이 다시 확산하고 있다.
5일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비트코인은 7만260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전날보다 약 5.8% 상승했다. 지난달 28일(6만3000 달러)보다 약 15% 반등했다. 한 때 7만4000달러대까지 올라 약 한 달 만에 가장 높은 시세를 기록했다. 이더리움·엑스알피(XRP) 등 주요 암호화폐도 동반 상승세다.
반면 금값은 널뛰기 장세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금 현물 가격은 이란 공습 직전인 지난달 27일 온스당 5277달러에서 이달 2일 5327달러까지 상승했지만, 이후 5087달러(3일)까지 급락한 뒤 5일(오후 4시 기준) 5165달러에 거래 중이다.
암호화폐 상승 요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전쟁 충격이 암호화폐에 대한 저평가 인식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데이터 기업 글래스노드는 보고서에서 “시장은 위기 가격 반영 국면에서 벗어나, 포지셔닝(가격의 방향성을 예측하고 투자하는 것)이 가격 움직임의 핵심 동력이 되는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관의 저가 매수세도 힘을 보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2~3일 미국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 약 6억8000만 달러가 순유입됐다. 김윤정 LS증권 연구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암호화폐 법안인 ‘클래리티 법안’ 지지를 표명한 것이 정책 불확실성 완화 기대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암호화폐 산업을 미국의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며 규제 정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이 전쟁 충격 속에서도 빠르게 회복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비트코인이 금융 충격 시 금과 유사한 ‘안전자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자산운용사 타거스캐피털은 “금이 하락한 것은 전통적인 안전자산도 시장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높지만 보다 유연한 대안 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닉 퍼크린 코인뷰로 창업자는 “비트코인 ETF 자금 유입은 기관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위기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헤지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창업자 레이 달리오는 최근 인터뷰에서 “금은 오직 하나뿐”이라며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양자컴퓨팅에 대한 보안 취약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암호화폐가 금융시장 변화를 먼저 반영하는 풍향계라는 해석이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산운용사 드베이그룹의 나이젤 그린 최고경영자(CEO)는 “비트코인은 주식·금보다 가격 변동이 빠르고, 24시간 거래가 이뤄져 시장 방향성을 먼저 반영하는 선행 지표처럼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금이 가치 저장 수단이라면 비트코인은 투자 심리와 유동성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는 시장 지표라는 것이다.
향후 전망을 두고도 의견은 엇갈린다. 자산운용사 반에크의 얀 반에크 CEO는 “비트코인은 과거에도 3년 상승 후 4년째 조정 사이클을 반복해 왔는데, 현재 가격이 바닥 형성 단계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시장분석가 알렉스 쿠프치케비치는 “비트코인은 주식시장 변동성에 취약해 기관 투자가들의 레버리지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