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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의 읽는 클래식 듣는 문학] 호프만, 베토벤을 읽다

중앙일보

2026.03.0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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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에른스트 테오도르 빌헬름 호프만(사진)은 작가로 성공하기 전에 음악가로 활동했다. 모차르트를 존경해 가운데 이름 빌헬름을 아마데우스로 바꾸기까지 했지만, 현실은 밥벌이를 못 할 만큼 궁색했다. 불운도 잇따랐다. 1808년 9월, 밤베르크 극장의 악장으로 부임했지만, 단원들은 이미 서로 짜고 신임 악장의 지시를 듣는 둥 마는 둥 무시했다. 당연히 공연은 실패로 돌아갔고 어떻게 손써 볼 틈도 없이 두 달 만에 악장직을 잃었다. 밤베르크에 남아 있는 좁디좁은 호프만의 집은 그때 그의 형편이 어땠는지를 잘 말해준다.

하지만 최악의 시기에 그는 중요한 도약을 한다. 타의로 지휘대에서 내려왔지만 글만은 혼자서 쓸 수 있었다. 그는 베토벤 교향곡 5번에 대한 글을 ‘라이프치히 일반 음악 신문’에 실었다. 초연(1808년 12월 22일) 후 불과 1년여 만에 베토벤 음악의 핵심을 이처럼 명료하게 포착했다는 것은 그가 대단한 음악적 전문성과 더불어 상당히 진보적인 음악 미학관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베토벤의 음악은 두려움과 전율과 경악과 고통의 지렛대를 움직여 낭만주의의 본령인 저 끝없는 그리움을 일깨운다.”

고통의 체험이 삶의 의지를 더 깊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호프만 자신의 작품 인생에도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영혼의 심연을 들여다본 그는 이후 이성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저 인간 내면의 어두운 측면을 자기 문학의 주된 소재로 삼아 거기 천착하게 된 것이다. 고통과 어두움의 안쪽을 들여다보면서 거기서 인간 본연의 상상력을 지키는 것은 곧 그동안 무시해 왔던 인간 영혼의 신비라는 광대한 영역을 탐색하는 것과 같았다. 베토벤의 음악이 호프만의 문학의 산파 역할을 했다. 문학과 음악은 서로를 도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한다.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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