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대법원이 견고했던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의 ‘성역’에 균열을 냈다. 루이비통이 압구정동의 수선업자를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 침해 소송에서, 재판부는 이미 구매한 제품을 리폼하는 행위가 원칙적으로 상표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기념비적인 판결을 내놓았다. 4년에 걸친 법적 공방에 종지부를 찍은 이번 결정은 ‘브랜드의 통제권’과 ‘개인의 소유권’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획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루이비통을 비롯한 명품 브랜드들은 본사의 품질 관리망을 벗어난 리폼 제품이 브랜드의 희소성과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법리적으로 볼 때, 상표권은 제품이 처음 판매되어 권리자가 대가를 얻는 순간 그 목적을 다 한다는 ‘권리 소진(first-sale doctrine)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법원은 일단 소비자의 손에 들어온 물건에 대해 브랜드가 배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시도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번 판결 뒤에는 거대한 소비 트렌드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에서 에르메스 버킨백을 풍자적으로 재해석한 ‘워킨백(Walkin Bag)’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국내에서 낡은 명품을 해체해 새로운 소품으로 만드는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단순한 유행 그 이상이다. 이는 과시를 넘어 실용과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특히 MZ 세대에게 리폼은 환경 보호와 개성 표현을 동시에 잡는 ‘지속가능한(sustainable) 럭셔리’의 일환이다. 브랜드들이 상표권 보호라는 명분 뒤에 숨어 자원 재사용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기는 이제 어려워졌다.
대중문화는 이러한 욕망의 이면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최근 화제가 된 미스터리 스릴러 ‘레이디 두아’는 명품을 매개로 한 계급적 우월감과 뒤틀린 보상 심리를 극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제 명품 업계는 허영으로 점철된 과거의 유산인 ‘레이디 두아’식 소비와 결별해야 한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브랜드 네임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는 ‘MZ 두아’들이다. 글로벌 브랜드들 역시 폐쇄적인 통제를 넘어, 소비자 권리 강화와 공존할 수 있는 유연하고 입체적인 브랜드 관리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흥미롭게도 변화에 가장 보수적일 것이라 여겨졌던 사법부가 글로벌 명품 시장의 경직된 질서를 재편하고 가치 소비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었다. 상표권이라는 낡은 외투를 벗기고 소비자에게 창조적 자유를 허락한 대법원의 혜안에 박수를 보낸다. 시대 흐름을 정확히 읽어낸 결단, ‘브라보 마이 대법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