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뉴욕. 트라이베카(Tribeca)의 한 길모퉁이 카페이다. 창밖은 며칠 전의 기록적 폭설로 온통 하얗다. 70, 80년대의 소호나 그 이후의 첼시에 비해 신생 지역인 트라이베카가 미술의 중심지로 부상된 것은 겨우 6여 년 전부터이다. 그런데도 벌써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분위기가 신선하고 갤러리의 전시들도 인상적이다.
신생 트라이베카는 왜 미술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을까. 우선 전시 공간이 이색적이다. 건물마다 천장이 높아서 공간감이 좋은 데다 전시장마다 그리스식 기둥이 건물을 받치고 있다. 이 양식은 19세기 중반 주물 건축의 선구적 건축가들이 그리스 석재 기둥을 철 주물로 떠서 건물의 지지대로 세운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석재보다 얇고 가벼우나 오히려 내구성이 더 강해서 전시 공간에 적합한 재료였던 것이다. 새하얀 공간에 세워진 그리스식 기둥은 고전과 현대가 한 장소에서 만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곳으로 미술자본이 흘러든 것은 보다 다른 이유에서였다. 팬데믹 이후 이 지역 땅값과 렌트비가 낮아지자 몇몇 유력 갤러리들이 트라이베카에 자리를 잡으면서 미술지구로 변모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장 발굴한 전설적 화랑 건재
눈 밝은 중진 화랑 투자 안 아껴
트라이베카에 한국 작가 전시도
예나 이제나 맨해튼의 갤러리들은 작가를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일에 적극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본의 힘이 작용한다. 작가의 창작을 부추기고 국제적 미술 체제로 영입시키는 데 갤러리들이 돈을 쓰는 것이다. 트라이베카의 전시를 보며 포착한 최근 동향은 작가의 문화적 근본 뿌리가 어떻게 작업에 녹아 있는지를 주목한다는 점이다. 과거 주류 백인 작가들이 중심이 된 소호나 첼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아프리카나 라틴·중동·아시아 등 자신의 문화적 근거를 글로벌한 시각언어로 끌어올린 작가들의 전시가 눈에 띈다. 그중 고향의 진달래 덮인 산천을 추상화한 한국 작가의 전시도 대규모로 조명되어 여간 반갑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독창적 한국의 작가들이 진출할 수 있는 좋은 분위기이다. ‘지역적인 것이 국제적’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바로 그 지역성을 넘어 어떻게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일 테지만 말이다.
전 세계의 미술 노마드들이 뉴욕으로 속속 몰려드는 것도 이러한 매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업 자료를 가지고 원하는 갤러리를 찾아가는 일이 다반사이고 그러다 덜컥 스타덤에 오르기도 한다. 맨해튼의 업타운에는 미술사에 남는 존경받는 갤러리들이 여전히 건재하며 미술계의 명품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 계보를 이어 중진 갤러리들은 매의 눈을 갖고 작가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마치 벤처기업에 하듯 작가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미술의 지형도는 대체로 자본에 따라 변천하고 꽃피워진다. 하지만 블랙홀처럼 자본과 미술을 함께 빨아들이는 옥션 형태로는 현재 활동하는 작가의 창작을 살리기는 어렵다. 거기에는 거래는 있지만 투자는 없고 그 열매만 사고파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옥션은 옥션, 화랑은 화랑인 것이다. 작가와 작업의 현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은 역시 화랑이다. 미술의 현장을 살리는 가장 근본적 구조는 여전히 창작자와 갤러리 사이의 관계에 있다. 뉴욕이 현대미술의 메카로 여전히 군림하는 것도 작가와 갤러리 사이의 오랜 전통적 관계에 기반한 자본의 선순환 구조에 있는 것이다.
왕왕 작가와 갤러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미술사의 한 페이지가 되곤 한다. 20세기 중반 레오 카스텔리는 작품이 전혀 팔리지 않던 로버트 라우센버그에게 매달 생활비를 지원하여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베티 파슨스는 불안감과 빈곤에 시달리던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알아보고 지속적으로 전시를 열어 주어 물질적·심리적 보루 역할을 자처했다. 이렇듯 훈훈한 미담과 사연들이 얽혀들면서 걸출한 작가도, 그의 작품도 태어나는 것이다.
미술작품은 미적 감동의 소산이다. 화랑은 그 감동의 소산물을 사들이고 그것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이 구도는 변함이 없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뉴욕이고 트라이베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