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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수의 이코노믹스] 장기금리가 시장금리 좌우…기준금리 동결 착시서 벗어나야

중앙일보

2026.03.0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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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이 시장금리 결정하는 시대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중동 긴장 고조로 국제 유가가 뛰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자, 글로벌 장기 국채금리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장기금리의 들썩임을 단순한 ‘유가 쇼크’로 볼 일은 아니다. 주택담보대출과 회사채 같은 자금조달 비용은 장기 국채금리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의 관심은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금리(기준금리) 결정에 쏠린다. 시장은 Fed의 ‘추가 인하 재개 시점’과 한국은행의 ‘동결 지속 기간’을 두고 관망하고 있다. 가계와 기업은 정책금리가 내리거나, 최소한 더 오르지 않고 현 수준에 머물기만 해도 이자 부담이 조금씩 줄어들 것이라 기대한다.

중앙은행 고금리 마무리 기조 속
장기 국채금리는 오히려 상승 중

재정적자 확대로 국채 발행 증가
은행채·회사채 금리도 밀어 올려

공공채 수급, 금리 상승 압력 키워
자금 조달 환경은 고비용 구조로

하지만 이는 정책금리만 보고 생기는 ‘착시’일 수 있다. 정책금리는 중앙은행이 정하는 아주 짧은 기간의 금리에 대한 기준일 뿐이다. 반면 대출금리와 회사채 금리는 정책금리보다 만기가 긴 장기 국채금리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장기 국채금리가 오르면 정책금리가 멈춰도 대출금리는 잘 내려가지 않고, 금리 부담은 더 오래갈 수 있다.

장기금리 상승은 추세적 흐름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목은 두 가지다. 첫째, 장기 국채금리의 상승은 어제오늘 갑자기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최근 수년간 누적되어 온 구조적이고 추세적인 흐름이라는 점이다. 둘째, 주요국 중앙은행이 고금리 국면의 마무리를 이야기하며 금리를 내리거나 동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와중에도, 장기금리는 정책금리와 달리 따로 움직여 왔다는 점이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통화정책 역사에 등장했던 한 가지 아이러니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중반의 ‘그린스펀의 수수께끼(Greenspan Conundrum)’다. 필자가 박사를 마치고 Fed에서 이코노미스트 생활을 막 시작했던 2004년의 일이다. 집을 사려는 친구들은 “금리 좀 막아달라”고 농담을 했지만, 초짜 경제학자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정책금리는 계속 올랐다.

교과서대로라면 장기금리도 함께 올라야 하지만, 당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 자금이 미 국채로 대거 유입되면서 장기금리는 낮은 수준으로 지속됐다. 중앙은행이 단기금리를 올려도, 장기금리는 시장의 수급과 자금 흐름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20년이 지난 지금,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와 반대 방향의 현상을 마주하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이 고금리 국면의 마무리를 이야기하며 정책금리를 멈추거나 내릴 가능성을 논의하는데도, 장기 국채금리는 되레 다시 오르고 있다. 정책금리가 ‘멈춰도’, 시장은 장기에 대해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국면이 생기고 있다.

정책금리와 장기금리의 디커플링
중앙은행이 정하는 정책금리(기준금리)와 시장에서 거래되는 3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요즘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과 독일의 경우 2025년 정책금리가 정점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뒤에도 30년물 수익률이 재차 상승한다. 일본의 30년 국채수익률도 가파르게 올라간다. ‘정책금리는 동결(또는 인하)인데도, 장기금리는 상승’하는 디커플링(엇갈림) 현상이다.

박경민 기자
이 현상은 단순히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렸느냐 올렸느냐’로 설명되지 않는다. 30년 만기 국채수익률에는 향후 단기금리 전망뿐 아니라, 장기간 돈을 묶어 두는 데 대한 시간의 위험수당(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이 포함된다. 재정적자 확대에 따른 국채 발행 부담, 불확실성 확대, 중국을 비롯한 중앙은행의 미 국채 보유 축소 등으로 투자자들이 장기채 보유에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하면, 정책금리가 움직이지 않아도 장기금리는 올라갈 수 있다.

미국은 팬데믹 후 재정 지출 급증으로 국채 발행량이 급증했다. 의회예산처(CBO) 전망에서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202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6%대 수준으로 높은 편이고, 이자 지출(순이자)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 반복해서 지적된다. 국가부채 상환비용(이자 지출 규모)이 국방비 수준과 맞먹는다.

일본은 정책금리가 제로에 가깝던 기간이 길었고, 그 저금리가 엔 캐리 트레이드를 통해 해외 채권 수요를 떠받치는 한 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초장기물(30년·40년) 국채수익률이 빠르게 뛰며 장기금리의 민감도가 커졌다. 정책금리의 변화는 작아도 초장기물 수급이 흔들리면서 장기금리가 먼저 출렁이는 것이다.

박경민 기자
‘총수입-총지출’ 격차 커지는 한국
미국과 일본은 사정이 달라도 공통점이 있다. 세입보다 지출이 더 빠르게 늘어나는 재정적자 구조가 장기국채 시장을 꾸준히 압박해 왔다는 점이다. 그 결과 장기금리는 단지 경기나 통화정책 기대만으로 움직이지 않고, ‘앞으로 나올 국채 물량을 얼마나 소화해야 하느냐’라는 수급 논리에 점점 더 민감해졌다.

그렇다면 한국은 괜찮은가. 한국도 2019년 전후부터 세입 여건이 흔들리는 가운데 고령화에 따른 복지·이전지출 등 의무지출 압력이 커지면서 ‘총수입-총지출’ 격차가 벌어지는 모습이 뚜렷해졌다. 일각에서 ‘악어의 입’이라 부르는 이 격차는 단순한 회계상의 숫자가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미래의 이자비용을 키워 다른 정책지출을 잠식할 수 있는 구조적 경로를 뜻한다.

설명은 단순하다. 적자가 커질수록 국채 발행(공급)은 늘고, 늘어난 공급을 시장이 소화하는 과정에서 국채 가격이 눌리며 수익률(금리)은 올라가는 압력을 받는다. 장기금리가 오르면 은행채·회사채 금리도 함께 밀려 올라가 정책금리를 묶어 둬도 가계의 대출금리와 기업의 조달금리는 잘 내려오지 않는다. 결국 통화정책은 ‘정책금리는 동결인데, 체감금리는 높은 상태’라는 딜레마에 갇히기 쉽다.

여기에 최근 한국에서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크게 부각되는 국면이 있었다. 정부 결산 자료 기준으로 세입 부진과 지출 확대가 겹치며 적자가 커진 것이다. 관건은 재정지출의 필요성이나 적자의 ‘좋고 나쁨’이 아니다. 적자가 누적될수록 장기물 수급과 기간 프리미엄을 통해 장기금리를 밀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가 발행하는 국고채 너머, 수면 아래에 숨겨진 ‘준정부 부문’의 채권 수급 압력이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전체 공사채 발행 규모가 100조원을 웃돌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전력채권(한전채)이나 주택저당증권(MBS)의 순발행은 다소 잦아드는 흐름이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한국도로공사 등 일반 중앙 공기업이 재정 지출 확대를 측면에서 보조하는 과정에서 자금 조달을 늘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가적 과제인 첨단전략산업 지원을 위해 올해 15조원 한도로 발행되는 산업금융채권(산금채) 물량까지 더해지면, 특수은행채 발행도 다시 큰 폭으로 늘 수 있다. 주택 공급이나 첨단산업 진흥이라는 정책 목적이 중요하더라도, 결국 채권으로 조달하는 순간 시중의 한정된 자금은 우량채 시장으로 빨려 들어간다.

국고채·공사채·특수채는 상당 부분 같은 투자자 풀을 공유하므로, 금리 전반에 상승 압력(구축효과)이 번지기 쉽다. 실제로 필자가 공동연구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21년 이후의 한전채의 대규모 발행은 시장의 우량 회사채 금리와 거래 여건에 동반 충격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업 하나의 문제’로 보이던 물량이, 어느 순간 시장 전체의 자금조달 비용을 끌어올리는 경로로 작동한 것이다.

정책금리 착시 벗어나 부채 줄여야
글로벌 자금 흐름의 변화와 막대한 국채·공사채 공급이라는 구조적 파도 앞에서, 통화정책이 가시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는 과거보다 좁아졌다고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한국은행 정책금리가 일정 구간에서 멈춰 있는데도,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와 연동성이 큰 5년 만기 우량 은행채 수익률과 실물경제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다시 머리를 들며 우상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통화정책이 완화 쪽으로 움직이려 해도 대출금리와 회사채 금리는 쉽게 내려오기 어렵다. ‘정책금리 동결=이자 부담 완화’라는 기대가 빗나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분 좋은 정책 지출이라 하더라도 부채 조달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그 비용이 ‘장기금리 상승’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국민과 기업에 더 무거운 이자 청구서로 전가될 수 있다. 정부는 이 딜레마를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가계와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언젠가 정책금리가 내려가면 괜찮아지겠지’라는 기대나, 중앙은행만 바라보는 ‘정책금리 착시’에서 깨어나야 한다. 자금 조달의 환경이 고금리·고비용 구조로 바뀌고 있음을 인정하고, 부채를 줄이고 재무구조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중요한 질문은 ‘정책금리가 언제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장기금리가 올라도 견딜 수 있는 구조를 갖췄느냐’다. 장기금리의 경고등은 이미 켜졌다.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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