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직후 여당 내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가 꾸려질 무렵, 특위 위원 A가 민간 전문가 B에 이렇게 반신반의하듯 물었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에 맞춰 5000을 내걸었지만 스스로도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보진 않았다는 얘기다. B 역시 “꿈을 크게 가지면 이번 정부에선 아니라도 언젠가는 실현되지 않겠느냐”고 덕담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코스피에서 5000은 ‘꿈의 지수’였다. 새 정부 출범 7개월 만에 도달하리라곤 특위를 꾸린 의원도, 자본시장 전문가도 예상하지 못했다. 조기에 간판을 바꿔 달아야 할 상황이 된 특위 위원 A도 얼떨떨했던 모양이다. B에게 다시 “너무 빨리 가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고 한다. 목표 조기달성이 기쁘기는 하지만 이러다 갑자기 뚝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하는 부담감이 느껴졌다고 한다. B는 “이 정도 지수는 정부가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번엔 기업이 만든 것이니 걱정 마시라”고 답했다고 한다.
정부를 환호하게 만든 두 숫자
정책의 목표 아닌 결과일 뿐
일희일비 말고 다지면서 가야
벼락같이 왔던 코스피 5000의 주동력은 실제로 반도체였다.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발 메모리반도체 가격 급등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예상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다. 물론 상법 개정 등 정책 효과도 가세했다. 하지만 B의 말대로 어디까지나 보조적 역할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지수는 어느덧 과열 양상을 띠며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6000선을 뛰어넘었다. ‘활황 증시에 나만 소외된 것 아니냐’는 포모(FOMO)성 자금이 급격히 쏟아져 들어오면서다. 그러자 한국 증시의 저평가를 개탄하던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돈을 빌려 증시에 투자하는 ‘빚투’가 급증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당국에선 그 어떤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투기적인 부동산 시장에서 생산적 자본시장으로의 ‘머니무브’라는 긍정적 평가가 내려졌다. 여기에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린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시장이 ‘빚내서라도 주식을 사라’는 신호로 받아들였을 법하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미국의 이란 공격 이후 코스피는 이틀간 20%나 빠지는 폭락 장세를 연출했다. 경제 상황이 비슷한 상황의 일본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변동 폭이 크다. 무엇보다 지수가 지나치게 빠르게 오른 데다, 빚투처럼 불안정한 자금이 많이 들어온 탓에 외풍에 쉽게 흔들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5일 다시 급반등하긴 했지만, 롤러코스터 같은 아찔한 장세에 “코인 판과 뭐가 다르냐”는 자조가 나오는 중이다.
코스피 지수는 정책의 결과이지 목표는 아니다. 경제 체력을 키우고 체질을 개선해야 기업들의 실적이 올라가고, 증시로도 안정적인 자금이 들어온다. 소수 대기업의 오르락내리락하는 실적에만 기대거나 일희일비하는 단기자금을 쫓아선 지속가능한 ‘밸류 업’을 기대하긴 어렵다. 체력을 키우는 대신 당장 효과를 보자고 강장제만 찾다간 부작용만 생길 뿐이다.
정책의 결과와 목표가 뒤섞이고 있는 건 부동산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강남권 아파트값이 하락세로 접어들자 정부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한 고위 관료는 “순전히 대통령의 개인기로 강남 집값을 꺾었다”며 흥분하기도 했다. 물론 그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전례없이 강도 높은 대출규제, 서울 전역을 묶은 토지거래허가제가 밑바탕에 있다고 분석한다. 대통령의 개인기가 효과를 발휘한 대목은 다분히 정무적 측면에 있다. 광범위한 규제와 실망스런 공급대책에 불만이 터져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시장의 시선을 ‘다주택자와 정부의 대결’, 그리고 세금 문제로 돌려놨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남 집값이 조금 꺾이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주거 안정이고, 핵심은 서민과 중산층에 감당 가능한 이른바 ‘어포더블(affordable)한 주택’을 어떻게 공급할 지다. 다주택자들을 압박해 나오는 집만으로 이 수요를 맞추긴 역부족이다. 1월의 공급대책도 그나마 계획대로 풀려나갈지 불확실하다. 규제로 시간을 벌고, 대통령의 심리전으로 시선을 돌려놨지만 급반전한 증시처럼 상황이 돌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시장에선 씨가 마른 전세 매물에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5일 국무회의에서 “주식시장도 너무 상승만 해왔다. 조정을 하면서 가야 탄탄한데, 이번 기회에 좀 다지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바람직한 인식이다. 정책도 일희일비 말고 차분히, 다지면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