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뾰족한 페어링을 선호한다. 가령 누군가가 “순대엔 레드 와인이지”라고 하면 “그래서 어떤 레드 와인인데?”라는 반발심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와인에 관한 한 나는 무색무취한 문장을 싫어한다.
부침개 페어링 떡볶이만 봐도 그렇다. 맵지만 달콤한 엽기떡볶이, 고소하고 달큼한 짜장떡볶이, 기름에 볶은 기름떡볶이는 다 같은 떡볶이지만 다 다른 음식이다. 음식마다 맛이 다르기 때문에 와인 페어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한 가지 음식으로 뭉치기 어려운 우리 음식 중에 부침개도 있다. 나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 팔도 식당을 순례하다가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전국의 모든 백반 식당 메뉴판에 하나같이 부침개가 있었다.
그냥 부침개만 적어 놓은 집도 많았지만, 부침개 앞에 재료를 붙인 집이 더 많았다. 김치전·동태전·호박전·감자전·굴전·부추전·육전 등등, 세상에 부침개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미처 몰랐다. 부침개는 종류가 너무 많았다. 내가 선호하는 뾰족한 와인 페어링이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많았다.
어느 날 반전이 일어났다. 하고한 날 부침개를 먹고 다니다가 문득 깨달았다. 부침개는 속 재료보다 겉 재료, 즉 부침개를 감싼 바짝 구워진 밀가루 반죽이 부침개 페어링의 포인트였다. 부침개 속 재료에 매달리지 말고, 밀가루 반죽의 텁텁한 맛을 깔끔하게 바꿔주거나 밀가루 반죽의 고소한 맛을 더 고소하게 끌어올리는 와인을 찾자고 생각을 바꾸니까 비로소 부침개 와인이 보였다. 부침개에 김치가 들어가든, 굴이 들어가든 더 이상 상관이 없었다.
김희선 와인
내가 꼽은 부침개 와인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피노 누아(Pinot noir)로 만든 레드 와인이다.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볕을 받아먹고 자란 피노 누아 레드 와인은 딸기 케이크와 허브, 피망 껍질의 향이 폭탄처럼 터진다. 워낙 향이 화려해 모른 척하기가 쉽지 않다. 향을 맡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는 와인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화려한 와인이 부침개에 어울릴까 의심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놀랍게도 매우 잘 어울린다. 딸기 케이크와 딸기 잼의 달콤한 뉘앙스가 밀가루 반죽의 맛을 버터처럼 고소하고 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부침개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새우인지, 부추인지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반죽을 씹는 것만으로도 혀에 감칠맛을 안겨준다.
최근에 김희선 배우가 출시한 와인이 바로 캘리포니아 피노 누아로 만든 레드 와인이다. 흔히 ‘김희선 와인’으로 불린다. 세계적인 와인 메이커 조 와그너와 합작해 더 주목을 받았다.
김희선 와인의 진짜 이름은 ‘벨레 글로스 발라드(Belle Glos Balade)’다. 조 와그너의 와인 회사가 ‘쿠퍼 케인(Copper Cane)’인데, 쿠퍼 케인이 캘리포니아 피노 누아로 만드는 레드 와인 중에 ‘벨레 글로스’가 있다.
김희선 와인은 ‘벨레 글로스’ 브랜드에 ‘산책’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발라드’를 뒤에 붙여 이름을 지었다. 미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와인 브랜드가 한국의 유명 배우와 가벼운 산책을 나왔다는 뜻이겠다. 김희선 배우가 테이스팅도 하고 패키지 디자인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나에게 김희선 와인은 캘리포니아 피노 누아의 교과서 같은 와인이다. 이 화려한 레드 와인이 한국 부침개와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 재미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