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중앙시평] AI의 ‘사회적 수용성’ 논의할 때

중앙일보

2026.03.05 07:18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16년 3월 초, 한국에서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시합이 열렸다. 당시 대부분 사람들은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것은 인류의 미래를 예고하는 큰 이벤트였다. AI로 무장한 컴퓨터가 인간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바둑이라는 특수한 영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애써 평가절하하였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 기술
미래 사회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
반면 사회 변화에 대한 대비 부족
기술 적응 위한 선제적 준비 필요

그러나 2022년 11월 말 생성형 AI챗봇 챗GPT가 출시되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챗GPT의 능력에 놀란 세계의 빅테크 기업들은 엄청난 자금을 퍼부어가며 AI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에 따라 AI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였고, 이제는 추론의 단계를 넘어 에이전틱(Agentic) AI를 통해 과제 실행을 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문제는 이런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AI 기술의 사회적 함의와 윤리에 관한 논의이다. 주지하다시피 AI 기술은 인류의 생활 패턴과 사회 구조를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되는 파괴적인(disruptive) 기술이며, 그 영향력은 과거의 어떤 기술보다 광범위할 것이 확실하다. 심지어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초인공지능(ASI)이 나오면 인류가 멸망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기에 인공지능의 대부라고 불리는 제프리 힌턴 교수는 AI 기술의 궁극적 위험성 때문에 본인이 한 일에 대해 후회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에 몰두하는 기업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특히 미국, 중국 등 AI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국가들은 AI 기술이 끼칠 사회적 영향에 대해 별 신경을 안 쓰고 있고, 대부분 다른 나라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AI 3대 강국 도약’을 국정의 주요 추진 전략으로 삼고 있는데,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한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도 AI 기술 발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위원회에 8개의 분과가 있는데, 대부분 기술혁신과 인재 양성 등 기술 개발 위주이고 사회적 영향력을 연구하는 분과는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주요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이미 일반인들의 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다. 단지 AI 기술 개발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예를 들면 대학생들 중에 인공지능을 사용 안 해 본 학생은 이미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소위 피지컬 AI의 대표격인 로봇의 발전을 본 노동자들은 자기 직업이 없어질까 보아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AI가 자료 조사 같은 초급 지식노동자의 일을 잘하게 되자 법률회사나 회계법인 등에서는 벌써부터 신입사원 채용을 줄이고 있다.

그런데 만일 이런 일들이 널리 퍼지면 지금 일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계는 누가 책임지고 세금은 누가 낼까. 만일 모든 기업이 초급 지식노동자를 뽑지 않으면 AI의 실수를 가려낼 수 있는 경험있는 기술자들은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이러한 예는 유능한 인공지능 기술자(공급자)를 양성하는 것에 못지않게, AI 기술의 적용으로 영향받는 수많은 사람들(수요자)이나 조직, 사회적 제도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게다가 통상 기술 개발은 빠르게 일어나지만, 여기에 적응하는 사회적 제도를 만들고 정착시키는 일은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이 같은 ‘AI의 사회적 수용성’에 대해 준비하기는커녕, 관심조차 부족하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인 준비가 필수적인데도 말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학생들의 AI 챗봇 사용은 이미 일반화되었는데, 대학의 대응은 아직도 ‘챗GPT를 시험에 활용하는 것을 허용할지 말지’와 같은 문제에 매달려 있는 일이다. 마치 계산기가 널리 퍼져있는데, 학교에서 계산기 사용을 허용할지 말지 고민하는 형국이다. 앞으로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 AI 챗봇을 활용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으므로, 거기에 필요한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을 지금과는 다르게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학들은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가.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AI기술자를 양성하는 AI대학원이나 AX대학원을 지원하는 정부 사업은 있지만, AI시대에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할 대학이나 초중등 교육과정의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은 찾기 어렵다. 사실 사회 전체로 보면 기업과 노동조합의 문제, 사무직 초등 인재의 양성, 디지털 능력에 따른 양극화 완화, 더 나아가 기본 소득과 정치적인 의사 결정 방법 등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AI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회적 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너무 늦기 전에 최소한 연구라도 시작해야 할 때이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