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는 ‘정치 실험가’다. 2021년 6월 선거 조직과 캠프 없이 국민의힘의 ‘0선 중진’ 30대 당수가 된 이래 한국 정치의 변화를 추동하는 정치 실험을 꾸준히 해왔다. 2022년 국민의힘 대표 시절 지방선거에 도입한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PPAT)는 이번 6·3 지방선거 때도 치러진다.
그런 이준석 대표는 개혁신당 당수로 이번 지방선거를 이끌면서도 파격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기초의원 후보자에게 따로 기탁금을 받지 않고 99만원으로 선거 운동을 하는 ‘99만원 선거’, 유세 동선이나 공약 개발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AI 사무장’이 대표적 실험 주제다. 금배지 3명에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의 틈에 낀 소수 정당으로서의 틈새 전략이자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지만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고비용 선거 구조를 직접 타격한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이 대표는 민감한 주제에도 몸소 나서는 걸 거리끼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사실상 금기로 여겨지던 젠더 문제를 여의도로 끌고와 2030세대 남성들로부터 적극 지지를 받았다. “성별 갈라치기”라는 반작용도 컸지만 2024년 4월 총선 때 경기 화성을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며 당선하는 밑바탕이 됐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대표는 보수 진영의 금기인 부정선거론에 도전했다. 지난달 27일 강성 보수 유튜버 전한길씨와 7시간 동안 부정선거 유튜브 공개 토론을 진행했다. 실시간 접속자는 30만을 넘겼고, 5일 현재 조회수는 615만이 넘을 만큼 흥행에 대성공했다.
이 대표는 그런 기세로 5일에도 부정선거론과 싸웠다. 그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음모론의 바닷물을 들이킨 국민의힘은 더는 보수가 아니다”며 “보수 탈을 쓴 채 체제를 허무는 가장 위험한 급진 세력이 돼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는 강성 지지층과 국민의힘의 장외 투쟁 등 연대를 거론하며 “국민의힘이 음모론자들과 손잡으려 한다면 간판을 떼야 한다”고 직격했다.
이런 실험 정신은 일단 개혁신당 지방선거 출마 자원을 늘리는 데 긍정적 기여를 했다. 개혁신당에 따르면 이날 기준 당 공천시스템에 총 1114명이 가입했고, 이들 중 400명이 공천 지원을 마쳤다고 한다. 특히 지원자 중 282명(70.5%)이 40대 미만이라고 한다. 개혁신당 관계자는 “재정적 부담을 덜었기 때문에 젊은 인재들이 몰려들었다”고 했다. 천하람 원내대표는 “거대 양당과 차별화하려면 정치 스타트업처럼 여러 시도를 하면서 돌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제는 정치 실험과 정치 현실은 별개라는 점이다. 실제 정당 지지율에 이런 냉정한 현실이 반영돼 있다. 지난달 26~27일 리얼미터·에너지경제신문의 무선전화 자동응답(ARS) 조사에 따르면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7.1%, 국민의힘 33.8%, 조국혁신당 3.3%, 개혁신당 2.2%였다. 지난해 7월 이 대표 취임 이후 최저치였다. 지난해 3월 대선 당시 이 대표 득표율인 8.34%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당 지지율 정체에는 보수 진영 전체가 부진의 늪에 빠진 점도 작용했다. 당초 장동혁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힘과 대여 투쟁 연대 전선을 형성해 시너지를 내려던 게 이 대표의 구상이었다.
하지만 한동훈 전 대표 제명,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등 국민의힘의 내홍이 극에 달하며 이 대표의 연대 구상은 어긋났다. 이에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과의 전쟁을 내세워 국민의힘과 차별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며 연일 국민의힘을 비판하고 있다.
문제는 국민의힘을 두드리는 게 외려 국민의힘의 강성 지지층을 결속하는 반작용까지 낳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영남 중진 의원은 “부정선거 토론에서 이 대표의 논리적으로는 앞섰지만, 외려 토론 뒤 강성 보수층을 자극해 오히려 그들의 결집을 부른 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개혁신당의 ‘99만원 출마 패키지’로 청년 출마자 비중이 늘어난 것을 두고도 “청년 지원자가 몰린 건 긍정적이지만, 뒤집어보면 실제 선거를 이길 수 있는 중량감 있는 빅샷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민 대표는 “이 대표가 정치 실험을 하고 있지만 지방선거에서 바로 승부를 내긴 어려울 것”이라며 “과거 바른미래당 수준으로 기초·광역의원을 확보하거나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연대로 오 시장의 당선을 이끌어내는 등의 성과를 내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바른미래당은 비례대표 광역의원 5명과 기초의원 21명이 당선됐다.
이준석 대표는 5일 통화에서 “정치 실험의 가시적 성과가 아직 지지율에 반영되고 있지는 않지만, 지방선거까지는 3개월의 시간이 남았다”며 “합리적 보수, 중도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기초의원 선거 등에서 개혁신당 뉴페이스들이 약진할 것”이라고 말했다.